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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ort

제10장

절대자의 풍요

श्रीभगवानुवाच
भूय एव महाबाहो श‍ृणु मे परमं वच: ।
यत्तेऽहं प्रीयमाणाय वक्ष्यामि हितकाम्यया ॥ १ ॥
스리-바가반 우바짜 śrī-bhagavān uvāca
부야 에바 마하-바호 bhūya eva mahā-bāho
스리누 메 빠라맘 바짜하 śṛṇu me paramaṁ vacaḥ
얏 떼’함 쁘리야마나야 yat te ’haṁ prīyamāṇāya
박샤미 히따-깜야야 vakṣyāmi hita-kāmyay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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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격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들어라, 오 강력한 힘을 지닌 아르주나여.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므로 너를 위해 내가 이미 설명한 것보다 더 나은 지식을 더 말해 주겠다.

Purport

바가반(bhagavān)이란 말은 빠라샤라 무니(Parāśara Muni)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섯 가지 풍요를 완전히 갖춘 자, 즉 완전한 힘과 명예, 부, 지식, 아름다움, 그리고 버림을 가진 자가 바가반, 즉 최고인격신이라고 한다. 끄리쉬나께서 이 지상에 계셨을 때, 이 모든 여섯 가지 풍요를 보이셨다. 그러므로 빠라샤라 무니 같은 위대한 성인들은 끄리쉬나를 최고인격신으로 인정했다. 이제 끄리쉬나께서 아르주나에게 당신의 풍요로움과 행위에 관한 더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앞서 제7장을 시작으로, 주께서 이미 당신의 여러 에너지와 그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셨다. 이제 이 장에서는 아르주나에게 당신의 특정한 풍요에 관해 설명하신다. 이전 장들에서 끄리쉬나께서는 사람들이 강한 확신으로 헌애를 확립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여러 에너지를 명확히 설명하셨다. 이 장에서 다시 아르주나에게 당신의 현현과 다양한 풍요에 관해 말씀하신다.
지고한 주에 관해 더 들으면 들을수록 봉헌에 더더욱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헌애자와의 교류 속에서 항상 주에 관해 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봉헌을 증진할 것이다. 진정 끄리쉬나 의식이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헌애자들의 담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자들은 그러한 담론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아르주나는 당신께 아주 소중하기에 그를 위해 이러한 담론을 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न मे विदु: सुरगणा: प्रभवं न महर्षय: ।
अहमादिर्हि देवानां महर्षीणां च सर्वश: ॥ २ ॥
나 메 비두 수라-가나하 na me viduḥ sura-gaṇāḥ
쁘라바밤 나 마하르샤야하 prabhavaṁ na maharṣayaḥ
아함 아디르 히 데바남 aham ādir hi devānāṁ
마하르쉬남 짜 사르바샤하 maharṣīṇāṁ ca sarvaśa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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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데바나 위대한 성인조차 나의 기원이나 풍요에 관해 모른다. 그 이유는 모든 점에서 내가 그 데바들과 성자들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Purport

브라흐마 삼히따에 명시되어 있듯이 주 끄리쉬나는 지고한 주이다. 그 누구도 끄리쉬나보다 위대할 수 없다. 당신은 모든 원인의 원인이다. 여기에서 주께서도 친히 당신이 모든 데바와 성자의 기원이라고 말씀하신다. 데바들과 성인들조차 끄리쉬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조차 끄리쉬나의 이름과 성격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작은 지구의 소위 학자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누구도 이 지고한 주께서 왜 보통 인간으로 지상에 오셔서 그러한 경이롭고 비범한 행위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학식이 끄리쉬나를 이해하는 자격 요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데바들과 위대한 성자들이 정신적 사색으로 끄리쉬나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스리마드 바가바땀 또한 위대한 데바들조차 최고인격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은 불완전한 감각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추측하여 비인성주의와는 정반대의 결론인 물질적 본성의 세 가지 성질로 발현되지 않은 어떠한 것에 이르거나 혹은  정신적 사색으로 다른 어떤 것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어리석은 추측으로 끄리쉬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주께서 누구라도 절대 진리를 알고 싶다면, “여기에 최고인격신으로서 내가 있다. 내가 절대자이다.”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친히 계시지만 상상조차 불가능한 주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주께서는 항상 존재하고 계신다. 사실 우리는 그저 바가바드 기따와 스리마드 바가바땀에 있는 주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영원하고 축복과 지식으로 가득한 주를 이해할 수 있다. 통치하는 어떠한 힘으로나 비인성적 브라흐만으로서의 절대신에 관한 개념은 주의 하위 에너지에 있는 자들이 다가갈 수 있지만, 인격신의 개념은 초월적 위치에 오르지 않는 한 깨달을 수 없다.
여기에서 주께서 누구라도 절대 진리를 알고 싶다면, “여기에 최고인격신으로서 내가 있다. 내가 절대자이다.”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친히 계시지만 상상조차 불가능한 주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주께서는 항상 존재하고 계신다. 사실 우리는 그저 바가바드 기따와 스리마드 바가바땀에 있는 주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영원하고 축복과 지식으로 가득한 주를 이해할 수 있다. 통치하는 어떠한 힘으로나 비인성적 브라흐만으로서의 절대신에 관한 개념은 주의 하위 에너지에 있는 자들이 다가갈 수 있지만, 인격신의 개념은 초월적 위치에 오르지 않는 한 깨달을 수 없다.
यो मामजमनादिं च वेत्ति लोकमहेश्वरम् ।
असम्मूढ: स मर्त्येषु सर्वपापै: प्रमुच्यते ॥ ३ ॥
요 맘 아잠 아나딤 짜 yo mām ajam anādiṁ ca
벳띠 로까-마헤스바람 vetti loka-maheśvaram
아삼무다 사 마르뗴슈 asammūḍhaḥ sa martyeṣu
사르바-빠빠이히 쁘람우쨔떼 sarva-pāpaiḥ pramucy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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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태어나지 않은 사람으로, 시작 없는 사람으로, 모든 세상의 지고한 주로 아는 자, 오직 그가 여러 사람 가운데 현혹되지 않으며 모든 죄에서 벗어난다.

Purport

제7장 3절에서 말하기를, “마누샤남 사하스레슈 까스찓 야따띠 싣다예(manuṣyāṇāṁ sahasreṣu kaścid yatati siddhaye)”, 즉 영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 깨달음의 지식이 없는 수백 수천만의 평범한 사람보다 앞서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들의 영적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 중, 끄리쉬나가 최고인격신이고 모든 것의 주인이며 태어나지 않은 자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자는 영적으로 가장 뛰어난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다. 끄리쉬나의 지고한 위치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 바로 이 경지에 이를 때, 우리는 모든 죄업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주는 “태어나지 않은”이라는 뜻의 아자(aja)란 말로 묘사되고 있지만 주는 제2장에서 “아자”로 묘사된 생명체와는 다르다. 주는 물질적 집착 때문에 생사를 거듭하는 생명체와는 다르다. 속박된 영혼들은 육신을 바꾸지만, 주의 몸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질계에 내려오실 때조차, 주는 똑같은 태어나지 않은 자로 오시기에 제4장에서 주는 당신의 내적 능력으로 하위의 물질적 에너지에 영향받지 않고, 항상 상위 에너지 안에 계신다고 설명한다.
이 절에서 “벳띠 로까-마헤스바람(vetti loka-maheśvaram)”이라는 말은 주 끄리쉬나께서 전 우주의 가장 높은 주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가리킨다. 주께서는 창조 이전에 존재하고 계셨고, 당신의 창조와는 다르다. 데바는 모두 이 물질계 안에서 창조되었지만, 끄리쉬나는 그렇게 창조된 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끄리쉬나는 브라흐마와 시바와 같은 위대한 데바들과도 다르다. 그리고 당신이 브라흐마와 시바, 다른 모든 데바의 창조자이시기에 끄리쉬나가 모든 행성의 가장 높은 인격이시다.
따라서 스리 끄리쉬나는 창조된 모든 것과는 다르며, 그렇게 끄리쉬나를 아는 자는 누구나 즉시 모든 죄업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간은 지고한 주에 관한 지식을 얻어 모든 죄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직 봉헌으로 당신을 알 수 있으며, 바가바드 기따에서 말하듯 다른 어떠한 수단으로도 당신을 알 수 없다.
우리는 끄리쉬나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어리석은 자들만이 끄리쉬나를 보통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여기에서 다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어리석지 않고, 절대신의 근원적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큼 지적인 자는 항상 모든 죄업에서 벗어난다.
끄리쉬나가 데바끼(Devakī)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태어나지 않은 자일 수 있는가? 이것 역시 스리마드 바가바땀이 설명한다. 그가 데바끼와 바수데바 앞에 나타나셨을 때, 보통 아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원래 형상으로 현현하시었고, 그다음에 보통 아기의 모습으로 변신하셨다.
끄리쉬나의 지시로 된 것은 무엇이든 초월적이다. 그것은 상서롭거나 상서롭지 않은 물질적 반작용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물질계에서 길한 것과 불길한 것의 개념은 마음이 꾸며낸 것일 뿐인데, 그 이유는 이 물질계에서 길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 본성 자체가 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길하지 않다. 우리가 그저 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진짜 길함은 끄리쉬나 의식으로 하는 완전한 헌애와 섬기는 행위에 달렸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가 길하기를 원한다면 지고한 주의 가르침에 따라 일해야 한다. 그 가르침들은 스리마드 바가바땀과와 바가바드 기따와 같은 권위 있는 경전들이나 진정한 영적 스승에게서 받아야 한다. 영적 스승은 지고한 주를 대표하므로 그의 가르침은 지고한 주의 직접적 가르침이다. 영적 스승과 성자, 경전은 우리에게 같은 가르침을 준다. 이 세 가지 출처에서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르침에 따라 한 모든 행위는 이 물질계의 길한 행위나 불길한 행위의 반작용에서 벗어난다. 헌애자가 초월적 태도로 행위한다는 것은 실제로 버림을 의미하고, 이것을 산냐사(sannyāsa)라고 한다. 바가바드 기따의 제6장 첫 구절에서 말하듯이, 지고한 주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에 의무로서 일하고, 자기가 한 일의 결과에 안주하지 않는 자는 진정으로 버리는 자이다(아나스리따 까르마-팔람 anāśritaḥ karma-phalam). 지고한 주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자는 누구나 실제로 산냐시이고 요기이며, 산냐시나 가짜 요기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산냐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बुद्धिर्ज्ञानमसम्मोह: क्षमा सत्यं दम: शम: ।
सुखं दु:खं भवोऽभावो भयं चाभयमेव च ॥ ४ ॥
अहिंसा समता तुष्टिस्तपो दानं यशोऽयश: ।
भवन्ति भावा भूतानां मत्त एव पृथग्विधा: ॥ ५ ॥
붇디르 갸남 아삼모하하 buddhir jñānam asammohaḥ
끄샤마 사땸 다마 샤마하 kṣamā satyaṁ damaḥ śamaḥ
수캄 두캄 바보’바보 sukhaṁ duḥkhaṁ bhavo ’bhāvo
바얌 짜바얌 에바 짜 bhayaṁ cābhayam eva ca
아힘사 사마따 뚜쉬띠스 ahiṁsā samatā tuṣṭis
따뽀 다남 야쇼’야샤하 tapo dānaṁ yaśo ’yaśaḥ
바반띠 바바 부따남 bhavanti bhāvā bhūtānāṁ
맛따 에바 쁘리탁-비다하 matta eva pṛthag-vidhā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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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지식, 의심과 착각에서의 해방, 용서, 진실함, 감각의 통제, 마음의 통제, 행복과 불행, 생과 사, 두려움, 두려움 없음, 비폭력, 평정, 만족, 고행, 자선, 명예, 그리고 불명예, 생명체의 이 모든 자질은 오직 내가 창조하느니라.

Purport

좋든 나쁘든, 생명체의 여러 자질은 모두 끄리쉬나에 의해 생긴다고 여기에서 언급되었다.
지성이란 사물을 올바른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지식이란 무엇이 영적이며, 무엇이 물질인지를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 교육에서 획득하는 일반적 지식은 오로지 물질에만 관련되어 있고, 여기에서 이것은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식이란 영적인 것과 물질의 차이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교육은 영적인 것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오직 물질적 요소들과 육체적 필요만을 다룬다. 따라서 학문적 지식은 완전하지 않다.
지성이란 사물을 올바른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지식이란 무엇이 영적이며, 무엇이 물질인지를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 교육에서 획득하는 일반적 지식은 오로지 물질에만 관련되어 있고, 여기에서 이것은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식이란 영적인 것과 물질의 차이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교육은 영적인 것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오직 물질적 요소들과 육체적 필요만을 다룬다. 따라서 학문적 지식은 완전하지 않다.
감각의 통제란 감각을 불필요한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의 올바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금하지 않지만 불필요한 감각 만족은 영적 진보에 해롭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감각 사용은 절제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불필요한 생각을 삼가야 한다. 이것을 샤마(śama)라고 한다. 우리는 돈을 버는 궁리를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고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은 인간의 근본적 필요를 이해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며 권위에 따라야 한다. 사고력은 경전에 정통한 사람들과 성자들, 그리고 영적 스승들과 사고가 매우 발달한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 개발되어야 한다. 수캄(Sukham), 즉 즐거움 또는 행복은 끄리쉬나 의식과 관련된 영적 지식의 배양에 이로운 것에서 늘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끄리쉬나 의식의 배양에 해로운 것은 우리를 고통스럽거나 불행하게 한다. 끄리쉬나 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이로운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하고, 해로운 것은 거부해야 한다.
바바(Bhava), 출생은 육신과 관련해 이해되어야 한다. 영혼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이것은 바가바드 기따의 서두에서 이미 논의했다. 생과 사는 물질계에 태어난 육신에 적용된다. 두려움이란 미래에 관한 걱정으로 생긴다. 끄리쉬나 의식의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 영적 하늘, 우리의 고향, 절대신께 돌아갈 것이 확실하기에 두려움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그의 장래는 밝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다. 그들은 다음 생이 어떠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걱정 속에 있다. 근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끄리쉬나를 이해하는 것이며 항상 끄리쉬나 의식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스리마드 바가바땀(11.2.37)에서 “바얌 드비띠야비니베샤따 샷(bhayaṁ dvitīyābhiniveśataḥ syāt), 즉 두려움은 환영적 에너지에 몰두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환영적 에너지에서 벗어난 사람들, 즉 자기가 물질적 육신이 아니고 최고인격신의 영적 부분임을 확신하는 자들은 지고한 주를 위한 초월적 봉헌에 종사하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들의 장래는 아주 밝다. 이 두려움은 끄리쉬나 의식이 아닌 사람들의 상태이다. 아바얌(Abhayam), 두려움 없음은 오직 끄리쉬나 의식에 있는 자에게만 가능하다.
아힘사(Ahiṁsā), 비폭력이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거나 혼란에 빠뜨리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많은 정치인과 사회학자, 철학자 등이 약속하는 물질적 행위는 초월적 비전이 없어서 좋은 결과를 생산해내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 사회를 위해 무엇이 진정 이로운지 모른다. 아힘사란 인간의 육신을 올바로 이용할 수 있게 사람들을 훈련할 때 성취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영적 깨달음을 위한 것이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나아가지 않는 어떠한 움직임이나 행위는 인간의 육신에 대한 폭력이다. 사람들 대부분의 영적 행복을 장래에 증가시키는 것을 비폭력이라 한다.
사마따(Samatā), 평정이란 집착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집착하거나 매우 무관심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집착이나 혐오함 없이 이 물질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끄리쉬나 의식의 수행에 이로운 것은 받아들여야 하고 해로운 것은 거부해야 한다. 이것을 사마따, 평정이라고 한다. 끄리쉬나 의식의 사람은 거부할 것도 없고, 끄리쉬나 의식의 수행에 유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일 것도 없다.
뚜쉬띠(Tuṣṭi), 즉 만족이란 불필요한 행동으로 자꾸 물질적인 것들을 모으고자 애쓰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의 은총으로 얻게 된 무엇이든 그것에 만족해야 한다. 이것을 만족이라 한다. 따빠스(Tapas)란 금욕이나 고행을 의미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욕하는 것처럼 베다에는 많은 규칙과 규정이 있다. 때때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이렇게 자발적으로 행하는 어려움을 고행이라 한다. 이처럼, 특정한 날에 단식도 규정한다. 그러한 단식을 하고 싶지 않아도 끄리쉬나 의식의 과학에서 진보를 이루려는 굳은 결심으로 단식일에는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단식하거나 베다의 규정에 거슬러 단식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유로 단식해서도 안 된다. 바가바드 기따에 이것을 무지함으로 하는 단식이라고 하며, 암성과 동성으로 한 행위는 영적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선성으로 행한 것은 우리를 발전시키며 베다의 규정에 따른 단식은 영적 지식을 풍만하게 한다.
자선에 관해 보면, 자기 수입의 절반은 좋은 목적에 바쳐야 한다. 그러면 좋은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끄리쉬나 의식에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좋은 목적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목적이다. 끄리쉬나가 좋기 때문에 당신의 목적도 좋다. 따라서 끄리쉬나 의식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베다 문헌에 따르면 브라흐마나들에게 자선하라고 명한다. 이 실천은 비록 그 지시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잘 이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시 사항은 자선은 브라흐마나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들은 높은 영적 지식의 배양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흐마나란 자기 삶 전체를 브라흐만의 이해에 바치게 되어 있다. “브라흐마 자나띠띠 브라흐마나하(Brahma jānātīti brāhmaṇaḥ).” 브라흐만(Brahman)을 아는 자를 브라흐마나(brāhmaṇa)라고 한다. 따라서 브라흐마나들은 항상 드높은 영적 봉사에 종사하고 자신의 생계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베다의 문헌은 버리는 삶의 질서에 있는 사람, 즉 산냐시에게도 자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산냐시들이 집마다 구걸하는 것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를 위해서이다. 이 제도는 무지에 잠든 가정인들을 일깨우고자 집집이 방문하는 것이다. 가정인들은 가사에 몰두하느라 삶의 실제 목적, 끄리쉬나 의식을 잊고 있어서 산냐시들이 가정인들에게 구걸하러 다니며 그들이 끄리쉬나 의식이 되도록 권장한다. 베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깨어나 인간 형태의 삶에서 성취해야 할 것을 이루어야 한다. 이 지식과 방법을 산냐시들이 나누어 준다. 그래서 산냐시와 브라흐마나, 그리고 이와 유사한 좋은 목적을 위해 자선해야 하며 아무 데나 해서는 안 된다.
야샤스(Yaśas), 명성의 정의는 주 짜이따냐에 따르면 위대한 헌애자로서 알려질 때, 유명하다고 한다. 이것이 진짜 명성이다. 끄리쉬나 의식에서 위대한 자가 되면 자연히 알려지고 진정으로 유명해진다. 이러한 명성을 가지지 않은 자는 유명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특징은 인간 사회와 데바들 사회 전체에 나타난다. 다른 행성들에는 다른 형태의 인류가 존재하고 이 자질들은 거기에도 있다. 끄리쉬나께서 이 모든 자질을 창조하시지만, 이제 끄리쉬나 의식에서 진보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안에서 이것들을 개발해야 한다. 지고한 주의 봉헌에 종사하는 자는 주께서 마련해주신 모든 좋은 자질을 배양하게 된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보는 것의 기원은 끄리쉬나이다. 끄리쉬나께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이 물질계에서 저절로 나타날 수 없다. 이것이 지식이다. 비록 모든 것이 다른 상황에 있더라도 모든 것은 끄리쉬나에게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महर्षय: सप्‍त पूर्वे चत्वारो मनवस्तथा ।
मद्भ‍ावा मानसा जाता येषां लोक इमा: प्रजा: ॥ ६ ॥
마하르샤야 삽따 뿌르베 maharṣayaḥ sapta pūrve
짜뜨바로 마나바스 따타 catvāro manavas tathā
맏-바바 마나사 자따 mad-bhāvā mānasā jātā
예샴 로까 이마 쁘라자하 yeṣāṁ loka imāḥ prajāḥ

Synonyms

Translation

일곱 명의 위대한 성인과 그보다 앞선 네 명의 위대한 성인, 그리고 마누들(인류의 조상)은 나에게서 나오고 내 마음에서 태어나며, 여러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들에게서 나오느니라.

Purport

주께서 우주의 인구에 관한 발생 기원을 약술하고 계신다. 브라흐마(Brahmā)는 히란야가르바(Hiraṇyagarbha)로 알려진 지고한 주의 에너지에서 태어난 최초의 생명체이다. 그리고 브라흐마에게서 일곱 성인이 태어났으며, 그들에 앞서 사나까(Sanaka), 사난다(Sananda), 사나따나(Sanātana), 사낫-꾸마라(Sanat-kumāra)로 불리는 네 성인과 마누들이 태어났다. 모두 25명의 위대한 성인들은 전 우주에 걸친 생명체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물질계에는 무수한 우주가 있고 그 우주 내에 무수한 행성이 있으며, 각 행성은 여러 종의 생명체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이 25명의 조상에서 태어났다. 먼저 브라흐마로부터 사나까, 사난다, 사나따나, 사낫-꾸마라가 나오고, 그다음은 루드라(Rudra), 그다음은 일곱 성인, 그리고 이런 식으로 모든 브라흐마나와 끄샤뜨리야가 최고인격신의 에너지에서 태어난다. 브라흐마는 삐따마하, 즉 할아버지로, 끄리쉬나는 쁘라삐따마하, 즉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바가바드 기따의 제11장(11.39)이 명시한다.
एतां विभूतिं योगं च मम यो वेत्ति तत्त्वत: ।
सोऽविकल्पेन योगेन युज्यते नात्र संशय: ॥ ७ ॥
에땀 비부띰 요감 짜 etāṁ vibhūtiṁ yogaṁ ca
마마 요 벳띠 땃뜨바따하 mama yo vetti tattvataḥ
소’비깔뻬나 요게나 so ’vikalpena yogena
유쟈데 나뜨라 삼샤야하 yujyate nātra saṁśayaḥ

Synonyms

Translation

나의 풍요로움과 신비한 힘에 관해 전적으로 확신하는 자는 순수한 봉헌에 종사한다. 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Purport

영적 완성의 절정은 최고인격신에 관한 지식이다. 지고한 주의 여러 가지 풍요로움에 관해 확신하지 않는 한, 봉헌에 종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절대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지만 얼마나 위대한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여기에 그 자세한 내용이 있다. 우리가 절대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실제로 알게 되면, 자연히 항복한 영혼이 되어 주의 봉헌에 종사하게 된다. 절대자의 풍요로움을 정말 알게 될 때, 그에게 항복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 이러한 실제 지식은 스리마드 바가바땀과 바가바드 기따, 그리고 다른 유사한 문헌들의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이 우주를 관리하기 위해 전 행성 체계에 분포되어 있는 데바가 많이 있고, 그들 중 수장은 브라흐마, 시바, 그리고 네 명의 위대한 꾸마라와 다른 조상들이다. 우주의 생명체들에게는 여러 조상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지고한 주, 끄리쉬나에게서 태어난다. 최고인격신, 끄리쉬나는 모든 조상의 근본 조상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고한 주가 가진 풍요의 일부이다. 이것을 확신하게 되면 의심 없이 강한 믿음으로 끄리쉬나를 받아들이게 되고 봉헌에 종사한다. 이 모든 특별한 지식은 주를 향한 사랑의 봉헌에 대한 관심을 증대하기 위해 필요하다. 끄리쉬나의 위대함을 앎으로써 진실한 봉헌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끄리쉬나가 얼마나 위대한지 완전히 이해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अहं सर्वस्य प्रभवो मत्त: सर्वं प्रवर्तते ।
इति मत्वा भजन्ते मां बुधा भावसमन्विता: ॥ ८ ॥
아함 사르바샤 쁘라바보 ahaṁ sarvasya prabhavo
맛따 사르밤 쁘라바르따떼 mattaḥ sarvaṁ pravartate
이띠 마뜨바 바잔떼 맘 iti matvā bhajante māṁ
부다 바바-사만비따하 budhā bhāva-samanvitāḥ

Synonyms

Translation

나는 모든 영계와 물질계의 기원이니라.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온다. 이것을 완벽히 아는 자는 나의 봉헌에 종사하고 진심으로 나를 숭배하느니라.

Purport

베다를 완벽히 공부하고 주 짜이따냐와 같은 권위자들에게서 지식을 얻고, 이러한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아는 학식 있는 자는 끄리쉬나가 물질계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을 온전히 알기에 지고한 주의 봉헌에 단호히 전념하게 된다. 그는 어떠한 엉터리 주석이나 바보들에게도 좌우되지 않는다. 모든 베다 문헌은 끄리쉬나가 브라흐마와 시바, 그리고 다른 모든 데바의 기원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아타르바베다(고빨라 따빠니 우빠니샤드 1.24)에서 말하기를, “요 브라흐마남 비다다띠 뿌르밤 요 바이 베담스 짜 가빠야띠 스마 끄리쉬나하(yo brahmāṇaṁ vidadhāti pūrvaṁ yo vai vedāṁś ca gāpayati sma kṛṣṇaḥ), 즉 태초에 브라흐마에게 베다 지식을 가르치고, 과거에 베다의 지식을 전파한 사람은 바로 끄리쉬나이다.” 나라야나 우빠니샤드(1)에서 다시 말하기를, “아타 뿌루쇼 하 바이 나라야노’ 까마야따 쁘라자하 스리제예띠(atha puruṣo ha vai nārāyaṇo ’kāmayata prajāḥ sṛjeyeti), 그런 후 최고인격신 나라야나께서 생명체를 창조하고자 하셨다.” 우빠니샤드는 이어서, “나라야낟 브라흐마 자야떼, 나라야낟 쁘라자빠띠 쁘라자야떼, 나라야낟 인드로 자야떼, 나라야낟 아쉬따우 바스바보 자얀떼, 나라야낟 에까다샤 루드라 자얀떼, 나라야낟 드바다샤디땨하(nārāyaṇād brahmā jāyate, nārāyaṇād prajāpatiḥ prajāyate, nārāyaṇād indro jāyate, nārāyaṇād aṣṭau vasavo jāyante, nārāyaṇād ekādaśa rudrā jāyante, nārāyaṇād dvādaśādityāḥ), 나라야나에게서 브라흐마가 태어났고, 나라야나에게서 조상들 또한 태어났다. 나라야나에게서 인드라가 태어났고, 나라야나에게서 여덟 바수(Vasus)가 태어났으며, 나라야나에게서 열한 명의 루드라가 태어났고, 나라야나에게서 열둘 아디땨(Ādityas)가 태어났다.” 이 나라야나는 바로 끄리쉬나의 확장이다.
같은 베다(나라야나 우빠니샤드 4)에서 말하기를, “브라흐만요 데바끼-뿌드라하(brahmaṇyo devakī-putraḥ), 데바끼의 아들, 끄리쉬나는 최고인격신이다.” 그런 다음, “에꼬 바이 나라야나 아신 나 브라흐마 네샤노 나뽀 나그니-소마우 네메 디아바쁘리티비 나 낙샤뜨라니 나 수랴하(eko vai nārāyaṇa āsīn na brahmā neśāno nāpo nāgni-somau neme dyāv-āpṛthivī na nakṣatrāṇi na sūryaḥ), 창조의 시작에 오직 최고인격신 나라야나만 존재했다. 브라흐마, 시바, 물, 불, 달이 없었고 천국과 지구도 없었으며 하늘의 별 또한 없었다(마하 우빠니샤드 1.2).” 마하 우빠니샤드에서 또한 시바는 지고한 주의 이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숭배의 대상인 브라흐마와 시바의 창조자는 바로 “지고한 주”라고 베다는 말한다.
마하바라따의 목샤 다르마(Mokṣa-dharma)에서 끄리쉬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쁘라자빠띰 짜 루드람 짜삐 prajāpatiṁ ca rudraṁ cāpy
아함 에바 스리자미 바이 aham eva sṛjāmi vai
따우 히 맘 나 비자니또 tau hi māṁ na vijānīto
마마 마야-비모히따우 mama māyā-vimohitau
“여러 조상과 시바, 그리고 다른 이들은 나의 환영적 에너지에 현혹되어 내가 그들을 창조했다는 것을 모를지라도 바로 내가 그들을 창조했느니라.” 바라하 뿌라나(Varāha Purāṇa)에서도 말하기를,
나라야나 빠로 데바스 nārāyaṇaḥ paro devas
따스마자따스 짜뚜르무카하 tasmāj jātaś caturmukhaḥ
따스맏 루드로 바받 데바하 tasmād rudro ’bhavad devaḥ
사르바-갸땀 가따하 sa ca sarva-jñatāṁ gataḥ
“나라야나는 최고인격신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브라흐마가 태어났고, 브라흐마에게서 시바가 태어났다.”
주 끄리쉬나는 모든 발생의 기원이며, 모든 것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불린다. 끄리쉬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태어났기에 내가 모든 것의 기원이다. 모든 것은 내 아래 있으며, 그 누구도 나를 넘어서지 않는다.” 끄리쉬나보다 더 높은 최고 통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다의 문헌을 참고하며 진정한 영적 스승에게서 이렇게 끄리쉬나를 이해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끄리쉬나 의식에 쏟아붓고, 진정으로 학식 있는 자가 된다. 그와는 반대로, 끄리쉬나를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다른 모든 사람은 바보일 뿐이다. 오직 바보만이 끄리쉬나를 보통 사람으로 여긴다. 끄리쉬나 의식의 사람이 바보들 때문에 당혹해서는 안 된다. 바가바드 기따의 권위 없는 논평과 해석을 모두 피하고 굳은 결심과 단호함으로 끄리쉬나 의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मच्च‍ित्ता मद्ग‍तप्राणा बोधयन्त: परस्परम् ।
कथयन्तश्च मां नित्यं तुष्यन्ति च रमन्ति च ॥ ९ ॥
맛-찟따 맏-가따-쁘라나 mac-cittā mad-gata-prāṇā
보다얀따 빠라스빠람 bodhayantaḥ parasparam
까타얀따스 짜 맘 니땸 kathayantaś ca māṁ nityaṁ
뚜샨띠 짜 라만띠 짜 tuṣyanti ca ramanti ca

Synonyms

Translation

내 순수한 헌애자들의 생각은 항상 나에게 있고, 그들의 삶은 나를 향한 봉사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그들은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항상 서로 일깨움으로써 커다란 만족과 축복을 얻는다.

Purport

순수한 헌애자들의 특성이 여기에 언급되었는데, 그들은 주를 향한 초월적 사랑의 봉사에 전적으로 종사한다. 그들의 마음은 끄리쉬나의 연꽃 같은 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직 초월적인 주제에 관한 것이다. 순수한 헌애자의 징후가 이 절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다. 지고한 주의 헌애자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지고한 주의 자질과 유희를 찬양하는 데 쓴다. 그들의 마음과 영혼은 항상 끄리쉬나에 잠겨있고, 다른 헌애자들과 주에 관해 논의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봉헌의 초기 단계에서 그들은 봉헌 그 자체에서 초월적 기쁨을 만끽하고,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절대신의 사랑에 실제로 위치하게 된다. 일단 초월적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주께서 당신의 보금자리에서 보이시는 가장 높은 완성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주 짜이따냐께서는 초월적 봉헌을 생명체의 마음에 씨를 심는데 비유하신다. 우주의 여러 행성을 떠도는 무수한 생명체가 있고, 그들 중 일부가 다행히도 순수한 헌애자를 만나 봉헌을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이 봉헌은 씨앗과 같아서 생명체의 마음에 씨를 심고, 하레 끄리쉬나, 하레 끄리쉬나, 끄리쉬나 끄리쉬나, 하레 하레 / 하레 라마, 하레 라마, 라마 라마, 하레 하레를 듣고 구송하면 나무에 주기적으로 물을 주어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그 씨앗이 열매를 맺는다. 봉헌의 영적 묘목은 물질적 우주의 덮개를 뚫고 영적 하늘의 브라흐마죠띠에 이를 때까지 점점 자라고 또 자란다. 영적 하늘에서도 나무는 더 자라 끄리쉬나의 행성, 골로까 브리다반이라고 하는 최상의 행성에 이른다. 마침내, 나무는 끄리쉬나의 연꽃 같은 발아래 은신하고 그곳에 머문다. 점차 나무가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봉헌의 나무 또한 열매를 생산하며, 구송과 듣기의 물주는 과정은 계속된다. 봉헌의 이 나무는 짜이따냐 짜리땀리따(마댜 릴라, 제19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거기에서 설명하기를, 완전히 성장한 나무가 지고한 주의 연꽃 같은 발에 은신할 때, 절대신의 사랑에 전적으로 몰입한다고 한다. 그러면 물고기가 물 없이 살 수 없듯이, 단 한시라도 지고한 주와 교류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헌애자는 지고한 주와의 교류 속에서 실제로 초월적 자질들을 얻게 된다.
스리마드 바가바땀 또한 지고한 주와 당신의 헌애자들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바가바땀(12.13.18)이 직접 말하듯 스리마드 바가바땀은 헌애자에게 매우 소중하다. “스리마드 바가바땀 뿌라남 아말람 얃 바이쉬나바남 쁘리얌(Śrīmad-bhāgavataṁ purāṇam amalaṁ yad vaiṣṇavānāṁ priyam).” 이 설명에서 물질적 행위, 경제 발전, 감각 만족, 해방에 관한 말은 없다. 스리마드 바가바땀은 지고한 주와 헌애자의 초월적 본성이 완전히 설명된 유일한 서술이다. 따라서 끄리쉬나 의식에 있는 깨달은 영혼은 그러한 초월적 문헌을 듣는 데서 계속된 즐거움을 느끼고, 이것은 어린 소년과 소녀가 서로 어울려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같다.
तेषां सततयुक्तानां भजतां प्रीतिपूर्वकम् ।
ददामि बुद्धियोगं तं येन मामुपयान्ति ते ॥ १० ॥
떼샴 사따따-육따남 teṣāṁ satata-yuktānāṁ
바자땀 쁘리띠-뿌르바깜 bhajatāṁ prīti-pūrvakam
다다미 붇디-요감 땀 dadāmi buddhi-yogaṁ taṁ
예나 맘 우빠얀띠 떼 yena mām upayānti te

Synonyms

Translation

사랑으로 나를 섬기는 데 항상 헌신하는 자들에게 나에게 올 수 있는 이해를 내가 줄 것이니라.

Purport

이 절에서 붇디 요감(buddhi-yogam)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 제2장에서 주께서 아르주나를 가르치시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하셨고, 붇디 요가의 방식으로 가르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이제 붇디 요가가 여기에서 설명된다. 붇디 요가 그 자체가 끄리쉬나 의식으로 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가장 높은 지성이다. 붇디란 지성을 의미하고, 요가란 신비주의적 행위나 신비한 높은 경지를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한 고향, 절대신께 돌아가고자 봉헌으로 끄리쉬나 의식에 전적으로 종사할 때, 그 행위를 붇디 요가라고 한다. 다른 말로, 붇디 요가란 우리가 이 물질계의 얽힘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의 궁극적 목표는 끄리쉬나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따라서 헌애자들과 진정한 영적 스승과의 교류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끄리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목표가 정해지면 천천히 그러나 점진적으로 나아가면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삶의 목표를 알지만 행위의 결실에 집착하는 것은 까르마 요가로 행동하는 것이다. 목표가 끄리쉬나라는 것을 알지만 끄리쉬나를 이해하고자 정신적 사색에 즐거움을 느끼는 자는 갸나 요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를 알고 끄리쉬나 의식과 봉헌을 통해 전적으로 끄리쉬나를 추구하는 것은 박띠 요가, 즉 완전한 요가인 붇디 요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 완전한 요가는 삶의 가장 높은 완성의 경지이다.
진정한 영적 스승이 있고 영적 기관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여전히 지성이 부족해 발전해 나가지 못하면 자기 안의 끄리쉬나께서 어려움 없이 결국 당신께 이르도록 가르침을 주신다. 자격 요건은 항상 끄리쉬나 의식에 종사하는 것이고 사랑과 헌신으로 모든 종류의 봉사를 행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든 끄리쉬나를 위해 일해야 하며 그 일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자아 인식의 길에 나아가기에 충분한 지성이 없는 헌애자라도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봉헌하면 주께서 진보할 기회를 주시어 결국에는 주께 이르게 된다.
तेषामेवानुकम्पार्थमहमज्ञानजं तम: ।
नाशयाम्यात्मभावस्थो ज्ञानदीपेन भास्वता ॥ ११ ॥
떼샴 에바누깜빠르탐 teṣām evānukampārtham
아함 아갸나-잠 따마하 aham ajñāna-jaṁ tamaḥ
나샤야먀뜨마-바바-스토 nāśayāmy ātma-bhāva-stho
갸나-디뻬나 바스바따 jñāna-dīpena bhāsvatā

Synonyms

Translation

그들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주고자 그들의 가슴속에 사는 내가 빛나는 지식의 등불로 무지에서 태어난 어둠을 없애느니라.

Purport

주 짜이따냐께서 베나레스(바르나시 Benares)에서 하레 끄리쉬나, 하레 끄리쉬나, 끄리쉬나 끄리쉬나, 하레 하레 / 하레 라마, 하레 라마, 라마 라마, 하레 하레 구송을 널리 전파했을 때, 수천 명의 사람이 그의 뒤를 따랐다. 쁘라까샤난다 사라스바띠(Prakāśānanda Sarasvatī)는 당시 베나레스에서 아주 영향력 있고 박식한 학자였는데, 주 짜이따냐를 감상주의자라고 비웃었다. 가끔 마야바디 철학자들은 헌애자들이 무지의 어둠 속에 있으며 철학적으로 순진한 감상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봉헌의 철학을 확립한 아주, 아주 박식한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헌애자가 그들의 문헌이나 영적 스승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봉헌에 진실하면 가슴속에 계시는 끄리쉬나께서 도와주신다. 그래서 끄리쉬나 의식에 종사하는 진실한 헌애자는 지식이 없을 수가 없다. 유일한 자격 요건은 완전한 끄리쉬나 의식으로 봉헌하는 것이다.
마야바디 철학자들은 분별하지 않고서는 순수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위해 지고한 주께서 이러한 답을 주신다. 순수한 봉헌에 종사하는 자들이 설령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베다의 원칙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더라도 이 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지고한 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절대 진리는 너무나 위대하여 정신적 노력으로만 당신을 이해하거나 얻을 수 없기에 주께서 아르주나에게 사색만으로는 지고의 진리, 절대 진리인 최고인격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수백 수천만 년을 계속 사색할 수는 있겠지만 헌애하지 않으면, 지고의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지고의 진리 끄리쉬나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봉헌으로만 지고의 진리, 끄리쉬나께서 어여삐 여기시어, 당신의 상상조차 불가능한 에너지로 순수한 헌애자의 가슴에 당신을 드러내신다. 순수한 헌애자는 가슴속에 항상 끄리쉬나를 모시고 있다. 태양과 같은 끄리쉬나와 함께 있기에 무지의 어둠은 즉시 사라진다. 이것은 순수한 헌애자에게 끄리쉬나께서 주시는 특별한 자비이다.
물질계에서 수백만의 생을 거치면서 쌓게 된 더러움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항상 물질주의의 먼지로 덮여 있지만, 봉헌에 종사하고 계속해서 하레 끄리쉬나를 구송하면 그 먼지는 빠르게 씻기고 순수한 지식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궁극적 목표, 비쉬누는 오직 이 구송과 봉헌으로만 얻을 수 있고, 정신적 사색이나 논쟁으로써는 얻을 수 없다. 순수한 헌애자는 삶의 물질적 필요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가슴에서 어둠을 제거하고 나면, 헌애자의 애정어린 봉헌에 기뻐하시는 지고한 주께서 저절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므로 헌애자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가바드 기따가 가르치는 핵심이다. 바가바드 기따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지고한 주께 완전히 항복하는 영혼이 되어 순수한 봉헌에 종사할 수 있다. 주께서 책임져 주시기에 우리는 모든 종류의 물질적 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अर्जुन उवाच
परं ब्रह्म परं धाम पवित्रं परमं भवान् ।
पुरुषं शाश्वतं दिव्यमादिदेवमजं विभुम् ॥ १२ ॥
आहुस्त्वामृषय: सर्वे देवर्षिर्नारदस्तथा ।
असितो देवलो व्यास: स्वयं चैव ब्रवीषि मे ॥ १३ ॥
아르주나 우바짜 arjuna uvāca
빠람 브라흐마 빠람 다마 paraṁ brahma paraṁ dhāma
빠비뜨람 빠라맘 바반 pavitraṁ paramaṁ bhavān
뿌루샴 샤스바땀 디뱜 puruṣaṁ śāśvataṁ divyam
아디-데밤 아잠 비붐 ādi-devam ajaṁ vibhum
아후스 뜨밤 리샤야 사르베 āhus tvām ṛṣayaḥ sarve
데바르시 나라다스 따타 devarṣir nāradas tathā
아시또 데발로 비아사하 asito devalo vyāsaḥ
스바얌 짜이바 브라비쉬 메 svayaṁ caiva bravīṣi me

Synonyms

Translation

아르주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최고인격신이고, 궁극적 보금자리이며 가장 순수하고 절대 진리입니다. 당신은 영원하고 초월적이며 최초의 사람이며 태어나지 않은 분이며 가장 위대하십니다. 나라다, 아시따, 데발라, 그리고 비아사 같이 위대한 모든 성인이 당신에 관한 이 진리를 확증하고, 이제 당신께서 친히 저에게 이것을 공언하고 계십니다.

Purport

이 두 절에서 절대자는 개별 영혼과 다르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에 지고한 주께서 마야바디 철학자들에게 기회를 주신다. 아르주나는 바가바드 기따의 핵심이 되는 이 장의 네 구절을 듣고 나서 모든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끄리쉬나를 최고인격신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즉시 대담하게 선언한다. “당신이 빠람 브라흐마(paraṁ brahma), 최고인격신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끄리쉬나께서 당신이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의 기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데바와 모든 인간은 끄리쉬나께 의존한다. 인간과 데바는 무지 탓에 자기들이 절대적이며 최고인격신에게서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지는 봉헌을 통해서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앞 절에서 주께서 설명하셨다. 이제, 주의 은총으로 아르주나는 당신을 베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지고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끄리쉬나가 아르주나의 친한 친구여서 당신을 최고인격신, 절대 진리로 부르며 아첨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절에서 아르주나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베다의 진리가 확증한다. 베다의 가르침은 지고한 주께 봉헌하는 자만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주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확언한다. 아르주나가 말한 이 구절의 한마디 한마디는 베다의 가르침에 부합한다.
께나 우빠니샤드(Kena Upaniṣad)에서 지고의 브라흐만이 모든 것의 안식처라고 말하고, 끄리쉬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은 당신에게 안식을 구한다고 설명하셨다. 문다까 우빠니샤드(Muṇḍaka Upaniṣad)에서도 모든 것이 안식하는 지고한 주는 오직 당신 생각에 끊임없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끄리쉬나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을 스마라남smaraṇam)이라고 하며 이것은 봉헌 방법의 하나다.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고 이 물질적 육신을 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끄리쉬나를 향한 봉헌이다.
베다에서 지고한 주는 순수한 것 중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한다. 끄리쉬나가 순수한 것 중 가장 순수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자는 모든 죄 많은 행위를 정화할 수 있다. 우리가 지고한 주께 항복하지 않는 한, 죄 많은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르주나가 끄리쉬나를 최상의 순수로 받아들이는 것은 베다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이것은 또한 여러 위대한 성자들의 으뜸인 나라다도 확증했다.
끄리쉬나는 최고인격신이며 우리는 항상 당신에 관해 명상하고 당신과의 초월적 관계를 즐겨야 한다. 끄리쉬나는 지고한 존재이다. 당신은 육체적 필요, 생과 사에서 벗어나 있다. 아르주나뿐만 아니라 베다 문헌들과 뿌라나, 그리고 역사가 이것을 확증한다. 따라서 모든 베다 문헌에서 끄리쉬나를 묘사하며, 지고한 주께서도 친히 제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태어나지 않지만, 이 지상에 종교 원칙을 확립하고자 현현하느니라.” 끄리쉬나는 최상의 기원이다. 당신이 모든 원인의 원인이며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나왔으므로 지고한 주에게는 어떠한 원인도 없다. 지고한 주의 은총으로 이 완벽한 지식을 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아르주나는 끄리쉬나의 은총을 받아 말하고 있다. 바가바드 기따를 이해하고자 하면 이 두 절에서 언급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빠람빠라(paramparā) 체계, 즉 사제 전수의 계승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제 전수에 속하지 않는 한, 바가바드 기따를 이해할 수 없다. 소위 학교 교육으로는 불가능하다. 불행히도 학력을 자랑하는 자들은 베다 문헌이 제시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끄리쉬나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완고한 확신을 고수한다.
सर्वमेतदृतं मन्ये यन्मां वदसि केशव ।
न हि ते भगवन्व्यक्तिं विदुर्देवा न दानवा: ॥ १४ ॥
사르밤 에딷 리땀 만예 sarvam etad ṛtaṁ manye
얀 맘 바다시 께샤바 yan māṁ vadasi keśava
나 히 떼 바가반 뱍띰 na hi te bhagavan vyaktiṁ
비두르 데바 나 다나바하 vidur devā na dānavāḥ

Synonyms

Translation

오 끄리쉬나,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진리로 완전하게 받아들입니다. 오 주여, 데바들도 악마들도 당신의 인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Purport

여기에서 아르주나는 믿음이 없고 악마적 성향을 지닌 자들은 끄리쉬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데바들조차 주를 알 수 없는데 이 현대 세상의 소위 학자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고한 주의 은총으로 아르주나는 지고의 진리가 끄리쉬나이며 끄리쉬나는 완벽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르주나의 길을 따라야 한다. 그는 바가바드 기따의 귄위를 전수받았다. 제4장에서 설명한 바처럼, 바가바드 기따의 이해를 위한 사제 전수의 빠람빠라 체계가 사라져서 끄리쉬나께서 아르주나와 사제 전수를 확립하고 계신다. 그 이유는 끄리쉬나께서 아르주나를 당신의 친한 친구이며 위대한 헌애자로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또빠니샤드(Gītopaniṣad)의 서론에 설명한 것처럼 바가바드 기따는 빠람빠라 체계를 통해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 빠람빠라 체계가 사라지자, 그것을 부활하고자 아르주나가 선택되었다. 아르주나가 끄리쉬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받아들인 점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바가바드 기따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고,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끄리쉬나가 최고인격신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स्वयमेवात्मनात्मानं वेत्थ त्वं पुरुषोत्तम ।
भूतभावन भूतेश देवदेव जगत्पते ॥ १५ ॥
스바얌 에바뜨마나뜨마남 svayam evātmanātmānaṁ
벳타 뜨밤 뿌루숏따마 vettha tvaṁ puruṣottama
부따-바바나 부떼샤 bhūta-bhāvana bhūteśa
데바-데바 자갓-빠떼 deva-deva jagat-pate

Synonyms

Translation

실로,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내적 힘으로 당신을 아십니다. 오 지고의 인간, 모든 것의 기원, 모든 생명체의 주인, 데바들의 신, 우주의 주인이시여!

Purport

지고한 주 끄리쉬나는 아르주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처럼 봉헌을 통해 당신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다. 악마적이거나 무신론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끄리쉬나를 알 수 없다. 우리를 주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사상은 심각한 죄악이고, 끄리쉬나를 모르는 자가 바가바드 기따에 대해 논평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바가바드 기따는 끄리쉬나의 말씀이고, 이것은 끄리쉬나의 과학이므로 아르주나가 이해한 대로 끄리쉬나에게서 기따를 이해해야 한다. 무신론자들에게 기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스리마드 바가바땀(1.2.11)이 말하듯이,
바단띠 땃 땃뜨바-비다스 vadanti tat tattva-vidas
땃뜨밤 야갸남 아드바얌 tattvaṁ yaj jñānam advayam
브라흐메띠 빠람아뜨메띠 brahmeti paramātmeti
바가반 이띠 샵댜떼 bhagavān iti śabdyate
절대 진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깨달을 수 있다. 비인성적 브라흐만과 국부적 빠람아뜨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고인격신이 그것이다. 따라서 절대 진리에 관한 이해의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최고인격신에 이르게 된다. 보통 사람 혹은 비인성적 브라흐만이나 국부적 빠람아뜨마를 깨달은 해방된 사람조차 절대신의 인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여기 끄리쉬나께서 말씀하신 바가바드 기따 구절을 통해 지고의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때때로 비인성주의자도 끄리쉬나를 바가반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방된 많은 사람이 끄리쉬나를 뿌루숏따마(Puruṣottama), 지고의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아르주나가 끄리쉬나를 뿌루숏따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가 끄리쉬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르주나가 끄리쉬나를 부따-바바나(Bhūta-bhāvana)로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끄리쉬나를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로 알게 되더라도 그가 최상의 통제자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끄리쉬나를 부떼샤(Bhūteśa), 즉 모든 이의 최고 통제자로 불렀다. 우리가 끄리쉬나를 모든 생명체의 최고 통제자로 안다고 하더라도 그가 모든 데바의 기원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여기에서 데바-데바(Deva-deva), 즉 모든 데바가 숭배하는 신으로 불렸다. 그런데 우리가 끄리쉬나를 모든 데바가 숭배하는 신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갓빠띠(Jagatpati)로 불렸다. 이로써 끄리쉬나에 관한 진리가 아르주나의 깨달음에 의해 이 구절에서 확립되었고, 우리는 끄리쉬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르주나의 발자국을 따라야 한다.
वक्तुमर्हस्यशेषेण दिव्या ह्यात्मविभूतय: ।
याभिर्विभूतिभिर्लोकानिमांस्त्वं व्याप्य तिष्ठसि ॥ १६ ॥
박뚬 아르하샤세쉐나 vaktum arhasy aśeṣeṇa
디뱌 햐뜨마-비부따야하 divyā hy ātma-vibhūtayaḥ
야비르 비부띠비르 로깐 yābhir vibhūtibhir lokān
이맘스 뜨밤 비아뺘 띠쉬타시 imāṁs tvaṁ vyāpya tiṣṭhasi

Synonyms

Translation

당신의 신성한 풍요로움으로, 당신께서 이 모든 세계에 두루 존재하시는 것에 관해 상세히 말씀해 주소서.

Purport

이 절에서 아르주나가 최고인격신, 끄리쉬나의 이해에 관해 이미 흡족해하고 있는 것이 나타난다. 끄리쉬나의 은총으로 아르주나는 개인적 경험과 지성,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도 얻게 되었으며 끄리쉬나가 최고인격신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에게 이제 의심이란 남아있지 않지만, 끄리쉬나께 당신의 편재하는 특성에 관해 설명해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아르주나는 끄리쉬나께서 어떻게 당신의 여러 에너지를 통해 널리 충만하실 수 있는지 여쭙고 있다. 우리는 아르주나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कथं विद्यामहं योगिंस्त्वां सदा परिचिन्तयन् ।
केषु केषु च भावेषु चिन्त्योऽसि भगवन्मया ॥ १७ ॥
까탐 비디암 아함 요김스 kathaṁ vidyām ahaṁ yogiṁs
뜨밤 사다 빠리찐따얀 tvāṁ sadā paricintayan
께슈 께슈 짜 바베슈 keṣu keṣu ca bhāveṣu
찐뚀’시 바가반 마야 cintyo ’si bhagavan mayā

Synonyms

Translation

오 끄리쉬나, 오 최상의 신비주의자이시여, 어떻게 하면 제가 항상 당신을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당신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떠한 형상으로 당신을 기억해야 합니까, 오 최고인격신이시여?

Purport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인격신은 당신의 요가 마야로 가려져 있다. 오직 항복한 영혼과 헌애자들만 당신을 볼 수 있다. 이제 아르주나는 그의 친구, 끄리쉬나가 최고인격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모든 곳에 편재하시는 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 과정을 알고자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르주나가 하는 이러한 질문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뛰어난 헌애자는 자신의 이해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이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아르주나는 바이쉬나바, 즉 헌애자이기에 자비를 베풀어 보통 사람을 위해 지고한 주의 편재하심에 관해 이해를 열어 주고 있다. 그는 끄리쉬나를 특히 신비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스리 끄리쉬나께서 요가 마야 에너지의 주인이시며, 그것으로 보통 사람들을 가리거나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끄리쉬나를 향한 사랑이 없는 일반인들은 끄리쉬나를 항상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질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르주나는 이 세상의 물질주의적 인간들의 사고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께슈 께슈 짜 바베슈(keṣu keṣu ca bhāveṣu)라는 말은 물질적 본성(“바바”란 말은 “물리적 본성”을 의미함)을 뜻한다. 물질주의자들은 끄리쉬나를 영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는 물리적인 것들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끄리쉬나가 어떻게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보는 노력을 하라고 조언한다.
विस्तरेणात्मनो योगं विभूतिं च जनार्दन ।
भूय: कथय तृप्‍तिर्हि श‍ृण्वतो नास्ति मेऽमृतम् ॥ १८ ॥
비스따레나뜨마노 요감 vistareṇātmano yogaṁ
비부띰 짜 자나르다나 vibhūtiṁ ca janārdana
부야 까타야 뜨립띠르 히 bhūyaḥ kathaya tṛptir hi
스린바또 나스띠 메’므리땀 śṛṇvato nāsti me ’mṛtam

Synonyms

Translation

오 자나르다나, 다시 당신의 풍요가 지닌 신비한 힘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소서. 들으면 들을수록 감로수 같은 당신의 말씀이 더 듣고 싶어져서 당신에 관해 듣는 데 저는 절대 포만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Purport

샤우나까(Śaunaka)를 선두로 나이미샤란야(Naimiṣāraṇya)의 리쉬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수따 고스와미(Sūta Gosvāmī )에게 했다.
바얌 뚜 나 비뜨리삐아마 vayaṁ tu na vitṛpyāma
웃따마-슬로까-비끄라메 uttama-śloka-vikrame
얏츠린바땀 라사-갸남 yac chṛṇvatāṁ rasa-jñānāṁ
스바두 스바두 빠데 빠데 svādu svādu pade pade
“훌륭한 기도로 찬양받는 끄리쉬나의 초월적 유희에 관해 계속해서 듣더라도, 결코 싫증 나지 않는다. 끄리쉬나와 초월적 관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발자국마다 주의 유희에 관한 묘사를 즐긴다(스리마드 바가바땀 1.1.19).” 따라서 아르주나는 끄리쉬나에 관해 듣는 데 관심 있고, 특히 어떻게 주께서 모든 곳에 두루 충만하신 지고한 주로 계시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암리땀(amṛtam), 즉 감로수에 관한 한, 끄리쉬나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나 말도 바로 감로수와 같다. 그리고 이 감로수는 실제적 경험으로 인지될 수 있다. 현대 이야기와 소설, 역사는 주의 초월적 유희와는 달리 계속해서 들으면 싫증 나게 되지만, 끄리쉬나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전 우주의 역사는 주의 화신들에 관한 유희로 가득하다. 뿌라나는 주의 다양한 화신이 펼치는 유희와 관련된 지난 시대들의 역사이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더라도 읽는 주제가 항상 신선하다.
श्रीभगवानुवाच
हन्त ते कथयिष्यामि दिव्या ह्यात्मविभूतय: ।
प्राधान्यत: कुरुश्रेष्ठ नास्त्यन्तो विस्तरस्य मे ॥ १९ ॥
스리-바가반 우바짜 śrī-bhagavān uvāca
한따 떼 까타이샤미 hanta te kathayiṣyāmi
디비아 햐뜨마-비부따야하 divyā hy ātma-vibhūtayaḥ
쁘라단야따 꾸루-스레쉬타 prādhānyataḥ kuru-śreṣṭha
나스땬또 비스따라샤 메 nāsty anto vistarasya me

Synonyms

Translation

최고인격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내가 너에게 나의 찬란한 현현에 관해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오 아르주나여, 나의 풍요로움은 끝이 없으니, 오직 그중에서 주된 것만을 들려주겠다.

Purport

끄리쉬나와 당신의 풍요로움이 지니는 위대함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개별 영혼의 감각은 한정되어 있어 끄리쉬나와 관련된 전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헌애자들은 끄리쉬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삶의 어떠한 때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끄리쉬나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염두에 두고 노력해야 한다. 오히려, 끄리쉬나에 관한 주제 그 자체가 너무나 달콤하여 헌애자들에게 그것은 감로수같이 여겨질 것이다. 따라서 헌애자들은 그것을 음미한다. 순수한 헌애자들은 끄리쉬나의 풍요로움과 당신의 다양한 에너지를 토론함으로써 초월적 즐거움을 느낀다. 따라서 그들은 끄리쉬나에 관해 듣고 토론하고자 한다. 끄리쉬나께서는 생명체가 당신의 풍요로움의 정도를 이해하지 못함을 아신다. 따라서 당신의 여러 에너지 가운데 오직 주된 현현만을 말씀하시고자 한다. 쁘라단야따하(prādhānyataḥ), 즉 “주된”이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주의 모습은 무한해서 우리는 지고한 주의 주된 일부 사항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쓰인 비부띠(vibhūti)라는 말은 주께서 당신의 풍요로움으로 전체 발현을 다스리심을 의미한다. 아마라 꼬샤(Amara-kośa) 사전에는 비부띠가 이례적인 풍요로움을 의미한다고 명시한다.
비인성주의자들과 다신론자들은 지고한 주의 이례적 풍요와 당신의 신성한 에너지의 현현을 이해할 수 없다. 물질계와 영계에서 모두 주의 에너지는 다양한 현현으로 분포된다. 이제 끄리쉬나께서 일반인들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신다. 따라서 당신의 다양한 에너지의 일부가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
अहमात्मा गुडाकेश सर्वभूताशयस्थित: ।
अहमादिश्च मध्यं च भूतानामन्त एव च ॥ २० ॥
아함 아뜨마 구다께샤 aham ātmā guḍākeśa
사르바-부따샤야-스티따하 sarva-bhūtāśaya-sthitaḥ
아함 아디스 짜 마댬 짜 aham ādiś ca madhyaṁ ca
부따남 안따 에바 짜 bhūtānām anta eva ca

Synonyms

Translation

나는 모든 생명체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초영혼이니라, 오 아르주나.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니라.

Purport

이 절에서 아르주나가 구다께샤(Guḍākeśa)로 불리고 있는데, 그 의미는 “잠의 어둠을 정복한 자”라는 뜻이다. 무지의 어둠 속에서 잠자는 자가 최고인격신께서 어떻게 당신을 물질계와 영계에서 여러 방식으로 현현하시는지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끄리쉬나가 아르주나를 이렇게 부른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르주나는 그러한 어둠을 넘어서기 때문에 최고인격신께서 당신의 다양한 풍요를 설명하는 데 동의하신 것이다.
끄리쉬나는 우선 아르주나에게 당신이 당신의 주된 확장으로 전 우주를 발현하게 한 영혼임을 알리고 계신다. 물질적 창조 이전에, 지고한 주께서는 당신의 전체적 확장으로 뿌루샤(puruṣa) 화신으로 나타나시는데, 그 뿌루샤 화신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끄리쉬나는 우주의 구성요소(마하 땃뜨바)의 영혼, 아뜨마이시다. 전체 물질적 에너지가 창조의 기원이 아니라 사실은 마하 비쉬누께서 마핫 땃뜨바, 즉 전체 물질적 에너지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는 영혼이다. 마하 비쉬누께서 발현된 우주로 들어가시어 각각 모든 생명체의 초영혼으로 당신을 다시 현현하신다. 생명체의 몸은 영혼의 불꽃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영혼의 불꽃이 존재하지 않는 한, 육체는 성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질의 발현은 초영혼, 끄리쉬나께서 들어가시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다. 수발라 우빠니샤드(Subāla Upaniṣad)에서 “쁘라끄리띠-아디-사르바-부딴따르-야미 사르바-세쉬 짜 나라야나하(prakṛty-ādi-sarva-bhūtāntar-yāmī sarva-śeṣī ca nārāyaṇaḥ), 즉 최고인격신은 발현된 모든 우주의 초영혼으로 존재하신다.”라고 말한다.
세 뿌루샤 화신이 스리마드 바가바땀에서 설명된다. 그들은 사뜨바따 딴뜨라(Sātvata-tantras)의 하나인 나라다 빤짜라뜨라에서도 설명된다. “비쉬노스 뚜 뜨리니 루빠니 뿌루사캬냐토 비두후(Viṣṇos tu trīṇi rūpāṇi puruṣākhyāny atho viduḥ), 최고인격신께서는 이 물질계의 발현에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까라노다까샤이 비쉬누(Kāraṇodaka-śāyī Viṣṇu)와 가르보다까샤이 비쉬누(Garbhodaka-śāyī Viṣṇu), 끄쉬로다까샤이 비쉬누(Kṣīrodaka-śāyī Viṣṇu)가 그것이다. 마하 비쉬누, 즉 카라노다까샤이 비쉬누는 브라흐마 삼히따(5.47)에도 설명된다. “야 까라나르나바-잘레 바자띠 스마 요가-니드람(Yaḥ kāraṇārṇava-jale bhajati sma yoga-nidrām), 즉 모든 기원의 기원이신 지고한 주 끄리쉬나께서는 마하 비쉬누의 모습으로 우주의 바다에 누워계신다.” 그러므로 최고인격신께서는 이 우주의 시작이고 우주적 발현의 유지자이며 모든 에너지의 끝이시다.
आदित्यानामहं विष्णुर्ज्योतिषां रविरंश‍ुमान् ।
मरीचिर्मरुतामस्मि नक्षत्राणामहं शशी ॥ २१ ॥
아디땨남 아함 비쉬누르 ādityānām ahaṁ viṣṇur
죠띠샴 라비람슈만 jyotiṣāṁ ravir aṁśumān
마리찌르 마루땀 아스미 marīcir marutām asmi
낙샤뜨라남 아함 샤시 nakṣatrāṇām ahaṁ śaśī

Synonyms

Translation

아디땨 중에서 나는 비쉬누이며, 빛 중에서 나는 찬란한 태양이며, 마룻 중에서 나는 마리찌이며, 별 중에서 나는 달이다.

Purport

열두 명의 아디땨(Ādityas)가 있는데, 그중에서 끄리쉬나가 가장 중요하다. 하늘에 빛나는 것 중에서 태양이 우두머리이고, 브라흐마 삼히따에서 태양을 주의 빛나는 눈이라고 했다. 우주에는 50여종의 바람이 부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은 데바 마리찌(Marīci)는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별 중에서 달이 밤에 가장 빛나기 때문에 달은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이 절을 통해 달은 별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도 태양의 빛을 반영한다. 이 우주 안에 많은 태양이 있다는 이론은 베다의 문헌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태양은 하나이며, 태양의 반사로 달은 빛나고, 별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가바드 기따는 여기에서 달은 별들 가운데 하나이므로 빛나는 별들은 태양이 아니라 달과 비슷하다고 암시한다.
वेदानां सामवेदोऽस्मि देवानामस्मि वासव: ।
इन्द्रियाणां मनश्चास्मि भूतानामस्मि चेतना ॥ २२ ॥
베다남 사마-베도’스미 vedānāṁ sāma-vedo ’smi
데바남 아스미 바사바하 devānām asmi vāsavaḥ
인드리야남 마나스 짜스미 indriyāṇāṁ manaś cāsmi
부따남 아스미 쩨따나 bhūtānām asmi cetanā

Synonyms

Translation

모든 베다 중에서 나는 사마베다이며, 데바 중에서 나는 천국의 왕 인드라이며, 여러 감각 중에서 나는 마음이며, 여러 생명체 가운데 나는 생명력(의식)이니라.

Purport

영혼과 물질의 차이는 물질은 생명체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의식이라는 것이 최상이며 영원하다. 물질을 결합해 의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
रुद्राणां शङ्करश्चास्मि वित्तेशो यक्षरक्षसाम् ।
वसूनां पावकश्चास्मि मेरु: शिखरिणामहम् ॥ २३ ॥
루드라남 샹까라스 짜스미 rudrāṇāṁ śaṅkaraś cāsmi
빗떼쇼 약샤-락샤삼 vitteśo yakṣa-rakṣasām
바수남 빠바까스 짜스미 vasūnāṁ pāvakaś cāsmi
메루 시카리남 아함 meruḥ śikhariṇām aham

Synonyms

Translation

루드라 중 나는 시바이며, 약샤사와 락샤사 가운데 나는 부의 신(꾸베라)이며, 바수 중 나는 불(아그니)이며, 그리고 산 중에서 나는 메루이니라.

Purport

열한 명의 루드라 중에서 상까라(Śaṅkara), 즉 시바가 우두머리이다. 그는 우주에서 암성을 주관하는 지고한 주의 화신이다. 약샤사와 락샤사들의 우두머리는 데바들의 재무 담당 수장인 꾸베라이며, 그는 지고한 주의 대표자이다. 메루는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유명한 산이다.
पुरोधसां च मुख्यं मां विद्धि पार्थ बृहस्पतिम् ।
सेनानीनामहं स्कन्द: सरसामस्मि सागर: ॥ २४ ॥
뿌로다삼 짜 무캼 맘 purodhasāṁ ca mukhyaṁ māṁ
빋디 빠르타 브리하스빠띰 viddhi pārtha bṛhaspatim
세나니남 아함 스깐다하 senānīnām ahaṁ skandaḥ
사라삼 아스미 사가라하 sarasām asmi sāgaraḥ

Synonyms

Translation

오 아르주나여, 내가 성직자들의 수장, 브리하스빠띠라는 것을 알아라. 장군 중에서 나는 까르띠께야이며, 물의 몸을 한 것 중에서 나는 대양이니라.

Purport

인드라는 천상의 행성에서 가장 높은 천국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다스리는 행성을 “인드라로까”라고 한다. 브리하스빠띠는 인드라의 사제이며, 인드라가 모든 왕의 수장이므로 브리하스빠띠는 모든 사제의 수장이다. 인드라가 모든 왕의 수장인 것처럼 스깐다(Skanda), 즉 빠르바띠(Pārvatī)와 시바 사이에서 난 아들, 까르띠께야는 모든 군대의 사령관 중 우두머리이다. 물의 몸을 한 것 중에서 대양이 가장 크다. 끄리쉬나의 이러한 표상들은 끄리쉬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암시에 불과하다.
महर्षीणां भृगुरहं गिरामस्म्येकमक्षरम् ।
यज्ञानां जपयज्ञोऽस्मि स्थावराणां हिमालय: ॥ २५ ॥
마하르쉬남 브리구라함 maharṣīṇāṁ bhṛgur ahaṁ
기람 아스몌깜 악샤람 girām asmy ekam akṣaram
야갸남 자빠-야교’스미 yajñānāṁ japa-yajño ’smi
스타바라남 히말라야하 sthāvarāṇāṁ himālayaḥ

Synonyms

Translation

위대한 성인 중에서 나는 브리구이며, 소리 진동 가운데 나는 초월적 옴이니라. 희생 중에서 나는 신성한 이름들의 구송(자빠 japa)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 중 나는 히말라야산맥이니라.

Purport

우주 최초의 생명체인 브라흐마는 다양한 종을 번식하려고 여러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 중에서 브리구는 가장 위대한 성인이다. 초월적 진동 중에서, 옴(옴까라 oṁ-kāra)은 끄리쉬나를 나타낸다. 희생 중에서 하레 끄리쉬나, 하레 끄리쉬나, 끄리쉬나 끄리쉬나, 하레 하레 / 하레 라마, 하레 라마, 라마 라마, 하레 하레 구송은 끄리쉬나를 가장 순수하게 대표하는 것이다. 희생 가운데 가끔 동물 희생을 권하기도 하지만, 하레 끄리쉬나를 구송하는 희생은 어떠한 폭력도 초래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순수하다. 이 세상에서 숭고한 것은 무엇이든지 끄리쉬나를 나타낸다. 따라서 세상의 가장 큰 산맥인 히말라야도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메루라는 이름의 산이 앞 절에서 언급되었는데, 메루는 때때로 움직일 수 있지만, 히말라야는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히말라야는 메루보다 더 위대하다.
अश्वत्थ: सर्ववृक्षाणां देवर्षीणां च नारद: ।
गन्धर्वाणां चित्ररथ: सिद्धानां कपिलो मुनि: ॥ २६ ॥
아스밧타 사르바-브릭샤남 aśvatthaḥ sarva-vṛkṣāṇāṁ
데바르쉬남 짜 나라다하 devarṣīṇāṁ ca nāradaḥ
간다르바남 찌뜨라라타하 gandharvāṇāṁ citrarathaḥ
싣다남 까삘로 무니히 siddhānāṁ kapilo muniḥ

Synonyms

Translation

모든 나무 중에서 나는 반얀 나무이며, 데바와 성인 중에서 나는 나라다이다. 간다르바 중에서 나는 찌뜨라라타이며, 완성을 이룬 성인 가운데 나는 성현 까삘라이니라.

Purport

반얀 나무(아스밧타 aśvattha)는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나무 중 하나인데, 인도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의식의 하나로서 이 나무에 종종 예배한다. 데바 가운데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헌애자인 나라다에게도 예배를 드린다. 따라서 그는 헌애자로서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간다르바 행성은 아름답게 노래하는 생명체들로 가득하며 그중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자가 찌뜨라라타이다. 완벽한 생명체 가운데 데바후띠(Devahūti)의 아들, 까삘라가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그는 끄리쉬나의 화신이며, 그의 철학은 스리마드 바가바땀에 언급되어 있다. 나중에 까삘라라고 불리는 또 다른 사람이 유명해졌지만 그의 철학은 무신론이다. 따라서 그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उच्‍चैःश्रवसमश्वानां विद्धि माममृतोद्भ‍वम् ।
ऐरावतं गजेन्द्राणां नराणां च नराधिपम् ॥ २७ ॥
웃짜이히스라바삼 아스바남 uccaiḥśravasam aśvānāṁ
빋디 맘 암리똗바밤 viddhi mām amṛtodbhavam
아이라바땀 가젠드라남 airāvataṁ gajendrāṇāṁ
나라남 짜 나라디빰 narāṇāṁ ca narādhipam

Synon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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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 중 감로수를 만들기 위해 대양을 젓는 동안 생겨난 우짜이히스라바이다. 위엄있는 코끼리 중 나는 아이라바따이며 사람들 가운데 나는 군주이다.

Purport

데바들과 악마들이 한때 대양을 젓는 데 모두 가담했다. 여기에서 감로수와 독이 생겨났는데, 시바가 그 독을 마셨다. 감로수에서 많은 생명체가 생겨났고, 그 중 우짜이스라바(Uccaiḥśravā)라는 이름의 말이 있다. 그 감로수에서 생겨난 다른 동물은 아이라바따(Airāvata)라는 코끼리이다. 이 두 동물은 감로수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며 끄리쉬나를 나타낸다.
사람들 가운데 왕은 끄리쉬나를 대표하는데 그 이유는 끄리쉬나는 우주를 유지하고, 신성한 자질 덕분에 임명된 왕은 자기 왕국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하라자 유디쉬띠라와 마하라자 빠릭싯, 그리고 주 라마와 같은 왕들은 항상 백성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매우 정의로운 왕들이다. 베다 문헌에서 왕은 절대신의 대표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종교가 부패함에 따라, 군주가 썩고 결국 폐지되었다. 하지만 과거에 정의로운 왕 밑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आयुधानामहं वज्रं धेनूनामस्मि कामधुक् ।
प्रजनश्चास्मि कन्दर्प: सर्पाणामस्मि वासुकि: ॥ २८ ॥
아유다남 아함 바즈람 āyudhānām ahaṁ vajraṁ
데누남 아스미 까마둑 dhenūnām asmi kāma-dhuk
쁘라자나스 짜스미 깐다르빠하 prajanaś cāsmi kandarpaḥ
사르빠남 아스미 바수끼히 sarpāṇām asmi vāsukiḥ

Synonyms

Translation

모든 무기 중 나는 번개이며 모든 소 중에서 나는 수라비이다. 생명을 잉태하는 원동력 중에서 나는 깐다르빠, 사랑의 신이며 뱀 중에서 나는 바수끼이다.

Purport

참으로 강력한 무기인 번개는 끄리쉬나의 힘을 나타낸다. 영계의 끄리쉬나로까에는 항상 젖을 짤 수 있는 암소들이 있고,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우유를 준다. 물론 그러한 소는 이 물질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끄리쉬나로까에는 그들이 존재한다고 언급된다. 주께서는 그러한 소를 많이 두시며 이 소들을 수라비(surabhi)라고 한다. 주께서는 수라비 소를 돌보는 일을 하신다고 명시되어 있다. 깐다르빠는 좋은 아들을 기원하는 성욕이다. 따라서 깐따르빠는 끄리쉬나를 나타낸다. 가끔 감각 만족을 위해서만 성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성교는 끄리쉬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아이를 갖기 위한 성생활은 깐다르빠라고 하며 끄리쉬나를 상징한다.
अनन्तश्चास्मि नागानां वरुणो यादसामहम् ।
पितॄणामर्यमा चास्मि यम: संयमतामहम् ॥ २९ ॥
아난따스 짜스미 나가남 anantaś cāsmi nāgānāṁ
바루노 야다삼 아함 varuṇo yādasām aham
삐뜨리남 아르야마 짜스미 pitṝṇām aryamā cāsmi
야마 삼야마땀 아함 yamaḥ saṁyamatām 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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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머리 여럿 달린 나가 중에서 나는 아난따이며 물속에 사는 생명체 중에서 나는 데바 바루나이다. 죽은 조상 중에서 나는 아르야마이고 법을 실행하는 자 중에서는 나는 죽음의 신 야마이니라.

Purport

머리 여럿 달린 나가(Nāga) 구렁이 중에서 아난따(Ananta)가 가장 위대하고, 수생 동물 중에서 바루나(Varuṇa)가 가장 위대하다. 그들은 모두 끄리쉬나를 상징한다. 또한 끄리쉬나를 대표하는 아르야마(Aryamā)가 주재하는 조상들의 행성, 삐따(Pitā)가 있다. 악한들을 처벌하는 많은 생명체가 있고 그중에서 야마(Yama)가 수장이다. 야마는 지구와 가까운 행성에 산다. 죄를 많이 지은 자들은 죽은 후 그곳에 가며, 야마가 그들에게 여러 종류의 벌을 내린다.
प्रह्लादश्चास्मि दैत्यानां काल: कलयतामहम् ।
मृगाणां च मृगेन्द्रोऽहं वैनतेयश्च पक्षिणाम् ॥ ३० ॥
쁘라흘라다스 짜스미 다이땨남 prahlādaś cāsmi daityānāṁ
깔라 깔라야땀 아함 kālaḥ kalayatām aham
므리가남 짜 므리겐드로’함 mṛgāṇāṁ ca mṛgendro ’haṁ
바이나떼야스 짜 빡쉬남 vainateyaś ca pakṣiṇā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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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땨 악마 중에서 나는 헌신적인 쁘라흘라다이고, 정복자 가운데 나는 시간이며, 야수 중 나는 사자이며, 새 중에서 나는 가루다이다.

Purport

디띠(Diti)와 아디띠(Aditi)는 자매이다. 아디띠의 아들을 아디땨(Āditya)라고 하며, 디띠의 아들을 다이땨(Daitya)라고 한다. 아디땨들은 전부 주의 헌애자이고, 다이땨들은 모두 무신론자이다. 쁘라흘라다(Prahlāda)는 비록 다이땨 가문에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헌애자였다. 그의 봉헌과 신성한 성품 때문에 그는 끄리쉬나의 대표자로 여겨진다.
여러 제압하는 원칙이 있고, 시간은 물질적 우주의 모든 것을 닳게 하므로 끄리쉬나를 상징한다. 여러 동물 중에서 사자는 가장 강력하고 사나우며, 수백만 종의 새 중에서 주 비쉬누를 모시고 나르는 가루다(Garuḍa)가 가장 위대하다.
पवन: पवतामस्मि राम: शस्त्रभृतामहम् ।
झषाणां मकरश्चास्मि स्रोतसामस्मि जाह्नवी ॥ ३१ ॥
빠바나 빠바땀 아스미 pavanaḥ pavatām asmi
라마 샤스뜨라-브리땀 아함 rāmaḥ śastra-bhṛtām aham
자샤남 마까라스 짜스미 jhaṣāṇāṁ makaraś cāsmi
스로따삼 아스미 자나비 srotasām asmi jāhnav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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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제 중에서 나는 바람이고, 무기를 휘두르는 자 중에서 나는 라마이며, 물고기 중에서 나는 상어이며, 흐르는 강 중에서 나는 갠지스강이다.

Purport

수생 동물 중에서 상어는 가장 큰 것 중 하나이고, 분명 사람에게 가장 위험하다. 따라서 상어는 끄리쉬나를 나타낸다.
सर्गाणामादिरन्तश्च मध्यं चैवाहमर्जुन ।
अध्यात्मविद्या विद्यानां वाद: प्रवदतामहम् ॥ ३२ ॥
사르가남 아디란따스 짜 sargāṇām ādir antaś ca
마댬 짜이바함 아르주나 madhyaṁ caivāham arjuna
아댜뜨마-비댜 비댜남 adhyātma-vidyā vidyānāṁ
바다 쁘라바다땀 아함 vādaḥ pravadatām 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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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조에서 나는 시작이고 끝이며 또한 중간이니라, 오 아르주나여. 모든 과학에서 나는 자아에 관한 영적 지식이며, 모든 논리 중에서 나는 결론적 진리이다.

Purport

창조된 발현 중 그 첫째는 모든 물질의 구성요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 설명했듯이, 마하 비쉬누, 가르보다까샤이 비쉬누와 끄쉬로다까샤이 비쉬누께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창조하시고 통제하시며 시바가 그것을 다시 파괴한다. 브라흐마는 부차적 창조자이다. 창조와 유지, 소멸의 모든 주체는 지고한 주의 물질적 자질을 나타내는 화신들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모든 창조의 시작, 중간 그리고 끝이다.
진보된 교육을 위한 다양한 서적이 있고 이것은 네 베다와 베다의 여섯 보충 서적, 베단따 수뜨라, 논리서, 종교서 그리고 뿌라나 등이다. 모두 합해 열네 가지 종류의 교육서가 있다. 이 중에서 아댜뜨마-비댜(adhyātma-vidyā), 즉 영적 지식을 다루는 책, 특히 베단따 수뜨라는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논리에는 여러 종류의 주장이 있다.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잘빠(jalpa)라고 한다. 오직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만 하려는 것은 비딴다(vitaṇḍā)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 결론은 베다라고 한다. 이 결정적 진리는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अक्षराणामकारोऽस्मि द्वन्द्व: सामासिकस्य च ।
अहमेवाक्षय: कालो धाताहं विश्वतोमुख: ॥ ३३ ॥
악샤라남 아-까로’스미 akṣarāṇām a-kāro ’smi
드반드바 사마시까샤 짜 dvandvaḥ sāmāsikasya ca
아함 에박샤야 깔로 aham evākṣayaḥ kālo
다따함 비스바또-무카하 dhātāhaṁ viśvato-mukha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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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문자 중에서 나는 첫 글자 “아”이며, 복합어 중에서 나는 이중 복합어이다. 나는 또한 소멸하지 않는 시간이며, 창조자 가운데 브라흐마이다.

Purport

산스끄리뜨어의 첫 글자, 아-까라(A-kāra)가 베다 문헌의 시작이다. 아-까라 없이 어떠한 것도 발음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소리의 시작이다. 산스끄리뜨어에도 많은 복합어가 있고, 그중 라마-끄리쉬나(rāma-kṛṣṇa) 같은 이중 복합어를 드반드바(dvandva)라고 한다. 이 복합어에서 라마와 끄리쉬나는 각기 복합어이므로 이를 이중 복합어라고 한다.
모든 종류의 죽이는 것 중 시간이 궁극적인데, 그 이유는 시간은 모든 것을 죽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큰불이 일어나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므로 시간은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창조하는 생명체 중에서 머리가 넷인 브라흐마가 수장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고한 주, 끄리쉬나의 대표자이다.
मृत्यु: सर्वहरश्चाहमुद्भ‍वश्च भविष्यताम् ।
कीर्ति: श्रीर्वाक्‍च नारीणां स्मृतिर्मेधा धृति: क्षमा ॥ ३४ ॥
므리뜌 사르바-하라스 짜함 mṛtyuḥ sarva-haraś cāham
욷바바스 짜 바비샤땀 udbhavaś ca bhaviṣyatām
끼르띠 스리르 박 짜 나리남 kīrtiḥ śrīr vāk ca nārīṇāṁ
스므리띠르 메다 드리띠 끄샤마 smṛtir medhā dhṛtiḥ kṣa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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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나는 모든 것을 삼키는 죽음이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들의 발생 원칙이니라. 여자들 가운데 나는 명성, 재산, 품위 있는 말투, 기억, 지성, 확고함 그리고 인내심이니라.

Purport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 순간 죽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매 순간 모든 생명체를 삼키고 있고, 그 마지막 일격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 죽음이 끄리쉬나이다. 미래의 발전에 관해 보자면, 모든 생명체는 여섯 단계의 변화를 거친다. 태어나고, 자라고, 당분간 유지하고, 번식하고, 늙고, 마침내 사라진다. 이 변화 중에서 그 첫째가 자궁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끄리쉬나다. 첫 발생이 미래 모든 행위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일곱 가지의 풍요로움, 즉 명성, 재산, 품위 있는 말투, 기억, 지성, 확고함 그리고 인내심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이 자질을 전부 또는 일부 가지고 있다면 영예롭다. 만약 누군가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유명해지면, 바로 그 자질이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한다. 산스끄리뜨어는 완벽한 언어이므로 매우 영예로운 언어이다. 공부하고 난 다음 우리가 그 주제를 기억한다면 좋은 기억, 즉 스므리띠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리고 여러 주제에 관한 많은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필요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을 지성(메다 medhā), 즉 또 다른 형태의 풍요라고 한다. 꾸준하지 못함을 극복하는 능력을 단호함 또는 확고함(드리띠 dhṛti)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여러 자질을 갖추었지만 겸손하고 상냥하게, 기쁨과 슬픔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인내(끄샤마 kṣamā)라고 하는 풍요로움을 갖춘 것이다.
बृहत्साम तथा साम्न‍ां गायत्री छन्दसामहम् ।
मासानां मार्गशीर्षोऽहमृतूनां कुसुमाकर: ॥ ३५ ॥
브리핫-사마 따타 삼남 bṛhat-sāma tathā sāmnāṁ
가야뜨리 찬다삼 아함 gāyatrī chandasām aham
마사남 마르가-시르쇼’함 māsānāṁ mārga-śīrṣo ’ham
리뚜남 꾸수마까라하 ṛtūnāṁ kusumākara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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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베다의 찬가 중에서 나는 브리핫-사마이고, 시 중에서 나는 가야뜨리이다. 달 중에서 나는 마르가시르샤(11~12월)이며 계절 중에서 나는 꽃피는 봄이니라.

Purport

주께서 모든 베다 중에서 당신은 사마베다라고 이미 설명하셨다. 사마베다는 여러 데바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들로 풍만하다. 이 노래 중 하나가 브리핫-사마로서, 이것은 독특한 가락을 지니며 한밤중에 부르는 노래이다.
산스끄리뜨어에 시를 짓는 명확한 법칙이 있는데, 현대 시처럼 운율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율격에 따른 시 중에서 올바른 자격을 갖춘 브라흐마나들이 구송하는 가야뜨리 만뜨라가 가장 중요하다. 가야뜨리 만뜨라는 스리마드 바가바땀에도 언급된다. 가야뜨리 만뜨라는 특히 절대신을 깨닫기 위한 것이므로 바로 지고한 주를 대표한다. 이 만뜨라는 영적으로 진보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이것을 성공적으로 구송하게 될 때, 주를 향한 초월적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 가야뜨리 만뜨라를 구송하려면 완성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자질, 즉 물질적 본성의 법칙에서 선성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가야뜨리 만뜨라는 베다 문명에서 매우 중요하며 브라흐만의 소리 화신으로 여겨진다. 브라흐마가 이 만뜨라를 시작했고 사제전수를 통해 그에게서 전해 내려왔다.
11월과 12월은 인도에서 추수하는 시기이며 이때 사람들이 무척 행복해하기 때문에 여러 달 중에서 최고의 달로 여겨진다. 물론 봄의 계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꽃이 피고 나무가 성장하는 시기여서 누구나 좋아한다. 봄에는 또한 끄리쉬나의 유희를 기념하는 많은 의식이 거행된다. 따라서 이 계절은 모든 계절 중에서 가장 즐거운 계절로 여겨지며 지고한 주,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द्यूतं छलयतामस्मि तेजस्तेजस्विनामहम् ।
जयोऽस्मि व्यवसायोऽस्मि सत्त्वं सत्त्ववतामहम् ॥ ३६ ॥
듀땀 찰라야땀 아스미 dyūtaṁ chalayatām asmi
떼자스 떼자스비남 아함 tejas tejasvinām aham
자요’스미 뱌바사요’스미 jayo ’smi vyavasāyo ’smi
삿뜨밤 삿뜨바바땀 아함 sattvaṁ sattvavatām 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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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한 모든 사기 중에서 도박이며, 찬란한 것의 찬란함이다. 나는 승리이고, 모험이며 힘센 자의 힘이니라.

Purport

전 우주를 통틀어 여러 종류의 사기꾼이 있다. 모든 사기 중에서 도박이 최고이고, 따라서 도박은 끄리쉬나를 상징한다. 절대자 끄리쉬나는 누구보다도 잘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끄리쉬나께서 누구를 속이고자 하시면 그 속임수를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 당신의 위대함은 일면이 아니라 다방면이다.
끄리쉬나는 우승에서 바로 그 승리이다. 당신은 찬란한 것의 찬란함이다. 진취적이며 근면한 것 중 끄리쉬나는 가장 진취적이며 가장 근면하다. 모험가 중에서 당신은 가장 모험심이 강하며, 힘센 자 중에서 가장 힘이 세시다. 끄리쉬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 누구도 힘으로 당신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조차 고바르단(Govardhana) 언덕을 들어 올리셨다. 사기에서 그 누구도 끄리쉬나를 능가할 수 없으며 찬란함에서, 승리에서, 진취적 기상에서, 그리고 힘에서도 당신을 능가할 자는 없다.
वृष्णीनां वासुदेवोऽस्मि पाण्डवानां धनञ्जय: ।
मुनीनामप्यहं व्यास: कवीनामुशना कवि: ॥ ३७ ॥
브리쉬니남 바수데보’스미 vṛṣṇīnāṁ vāsudevo ’smi
빤다바남 다난자야하 pāṇḍavānāṁ dhanañ-jayaḥ
무니남 아뺘함 비아사하 munīnām apy ahaṁ vyāsaḥ
까비남 우샤나 까비히 kavīnām uśanā kavi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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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쉬니의 자손 중에서 나는 바아수데바이며, 빤다바 중에서 나는 아르주나이니라. 성인 중에서 나는 비아사이며, 그리고 위대한 사상가 중에서 나는 우샤나이니라.

Purport

끄리쉬나는 근원적 최고 인격신이며, 발라데바(Baladeva)는 끄리쉬나의 제일 첫 번째 확장이다. 주 끄리쉬나와 발라데바 모두 바수데바(Vasudeva)의 아들로 현현하셨으므로 두 분 모두 바아수데바(Vāsudeva)로 불릴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끄리쉬나는 브린다반을 절대 떠나지 않으시기에 다른 곳에 현현하신 모든 형상의 끄리쉬나는 당신의 확장들이다. 바아수데바는 끄리쉬나의 즉각적인 확장이어서 끄리쉬나와 다르지 않다. 바가바드 기따의 이 구절에서 언급된 바아수데바는 발라데바, 즉 발라라마인데 그 이유는 그가 모든 화신의 원천이므로 바아수데바의 유일한 근원이다. 주의 즉각적 확장을 스밤샤(svāṁśa 개인적 확장)라고 하고, 비빈남샤(vibhinnāṁśa 분리된 확장)라 불리는 다른 확장들도 있다.
빤두의 아들 중에서 아르주나는 다난자야(Dhanañjaya)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 중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무니(muni), 즉 베다 지식에 정통한 학자들 가운데, 비아사는 이 깔리 시대의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여러 방식으로 베다를 설명했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 그리고 비아사는 끄리쉬나의 화신으로 알려져서 끄리쉬나를 대표한다. 까비(Kavi)란 어떤 주제를 아주 철저히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까비 중에서 우샤나(Uśanā), 즉 슈끄라짜리아(Śukrācārya)는 악마들의 영적 스승이며, 지성이 무척 높고 앞을 내다보는 정치가이다. 따라서 슈끄라짜리아는 끄리쉬나의 풍요를 나타내는 또 다른 상징이다.
दण्डो दमयतामस्मि नीतिरस्मि जिगीषताम् ।
मौनं चैवास्मि गुह्यानां ज्ञानं ज्ञानवतामहम् ॥ ३८ ॥
단도 다마야땀 아스미 daṇḍo damayatām asmi
니띠라스미 지기샤땀 nītir asmi jigīṣatām
마우남 짜이바스미 구햐남 maunaṁ caivāsmi guhyānāṁ
갸남 갸나바땀 아함 jñānaṁ jñānavatām aham

Synonyms

Translation

무법을 제압하는 여러 수단 중에서 나는 형벌이며, 나는 승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도덕성이다. 비밀스러운 것 중에서 나는 침묵이며, 나는 현명한 자들의 지혜이니라.

Purport

여러 제압하는 수단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한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악한들이 처벌받을 때, 그 처벌의 수단은 끄리쉬나를 상징한다. 어떤 활동 영역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승 요건은 도덕성이다. 듣고 생각하고 명상하는 비밀스러운 행위들 가운데 침묵이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침묵으로 아주 빠르게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자란 물질과 영혼, 절대신의 상위 에너지와 하위 에너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한 지식이 바로 끄리쉬나이다.
यच्च‍ापि सर्वभूतानां बीजं तदहमर्जुन ।
न तदस्ति विना यत्स्यान्मया भूतं चराचरम् ॥ ३९ ॥
얏짜삐 사르바-부따남 yac cāpi sarva-bhūtānāṁ
비잠 따다함 아르주나 bījaṁ tad aham arjuna
나 따다스띠 비나 얏 시안 na tad asti vinā yat syān
마야 부땀 짜라짜람 mayā bhūtaṁ carācaram

Synonyms

Translation

오 아르주나, 또한 나는 모든 존재를 생겨나게 하는 씨앗이니라. 움직이는 존재든 움직이지 않는 존재든 나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Purport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발현의 원인과 씨앗은 끄리쉬나다. 끄리쉬나의 에너지 없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끄리쉬나를 전능하다고 한다. 당신의 힘 없이는 움직이는 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끄리쉬나의 에너지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떠한 존재라도 마야, 즉 “아닌 것”이라고 한다.
नान्तोऽस्ति मम दिव्यानां विभूतीनां परन्तप ।
एष तूद्देशत: प्रोक्तो विभूतेर्विस्तरो मया ॥ ४० ॥
난또’스띠 마마 디비아남 nānto ’sti mama divyānāṁ
비부띠남 빠란따빠 vibhūtīnāṁ paran-tapa
에샤 뚣데샤따 쁘록또 eṣa tūddeśataḥ prokto
비부떼르 비스따로 마야 vibhūter vistaro mayā

Synonyms

Translation

오 적을 무찌르는 강력한 자여, 나의 신성한 현현에는 끝이 없느니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은 내 무한한 풍요의 일부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Purport

베다 문헌이 말하듯이, 절대자의 풍요로움과 에너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풍요로움의 한계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풍요와 에너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아르주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시고자 끄리쉬나께서 몇몇 예를 드신 것뿐이다.
यद्यद्विभूतिमत्सत्त्वं श्रीमदूर्जितमेव वा ।
तत्तदेवावगच्छ त्वं मम तेजोऽशसम्भवम् ॥ ४१ ॥
얃 얃 비부띠맛 삿뜨밤 yad yad vibhūtimat sattvaṁ
스리맏 우르지땀 에바 바 śrīmad ūrjitam eva vā
땃 따데바바갓차 뜨밤 tat tad evāvagaccha tvaṁ
마마 떼좀’샤-삼바밤 mama tejo-’ṁśa-sambhavam

Synonyms

Translation

풍요롭고, 아름답고, 영광된 창조는 내 찬란함의 단편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라.

Purport

영계에 있든, 물질계에 있든 어떠한 영광되고 아름다운 존재라도 끄리쉬나가 지닌 풍요의 단편적 발현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특별히 풍요로운 어떤 것이라도 끄리쉬나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अथवा बहुनैतेन किं ज्ञातेन तवार्जुन ।
विष्टभ्याहमिदं कृत्स्नमेकांशेन स्थितो जगत् ॥ ४२ ॥
아타 바 바후나이떼나 atha vā bahunaitena
낌 갸떼나 따바르주나 kiṁ jñātena tavārjuna
비쉬따뱌함 이담 끄릿스남 viṣṭabhyāham idaṁ kṛtsnam
에깜세나 스티또 자갓 ekāṁśena sthito jagat

Synonyms

Translation

그러나 아르주나여, 이 모든 세부 지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나의 파편 단 하나로 나는 전 우주에 걸쳐 존재하며 또한 이 전 우주를 유지하느니라.

Purport

지고한 주는 초영혼으로 모든 것에 들어가심으로써 전 우주에 존재하신다. 주께서 아르주나에게 어떻게 모든 것이 각기 풍요롭고 장엄하게 존재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에서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끄리쉬나께서 초영혼으로 그들 안에 들어가시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생명체인 브라흐마에서 가장 작은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주께서 그들 각각에 들어가시어 그들을 유지하시기 때문에 존재한다.
어떤 데바를 숭배하더라도 최상의 목표인 최고인격신에 이를 수 있다고 통상 설명하는 포교 단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데바들의 숭배는 권장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브라흐마와 시바 같은 가장 위대한 데바조차도 지고한 주가 가진 풍요로움의 일부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끄리쉬나는 태어난 모든 것의 기원이며 당신보다 위대한 자는 없다. 당신은 아사마우르드바(asamaurdhva)인데, 이 말은 그 누구도 끄리쉬나보다 뛰어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끄리쉬나와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빠드마 뿌라나에서 지고한 주를 데바나 혹은 브라흐마나 시바와 같은 범주로 간주하는 자조차 곧 무신론자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끄리쉬나의 에너지에 관한 풍요로움과 그 확장의 다양한 설명을 철저히 공부하면, 주 스리 끄리쉬나의 위치를 의심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흔들림 없이 끄리쉬나를 숭배하는 데 마음을 집중할 수 있다. 주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들어가 계시는 당신의 부분적 대표, 초영혼의 확장을 통해 모든 곳에 계신다. 그러므로, 순수한 헌애자는 완전한 봉헌을 통해 자기 마음을 끄리쉬나 의식에 집중하고, 그 결과 항상 초월적 경지에 위치하게 된다. 봉헌과 끄리쉬나 숭배는 이 장의 8절에서 11절에 걸쳐 아주 명확히 드러났다. 이것이 순수한 봉헌의 길이다. 최고인격신과 교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봉헌의 완성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이 장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끄리쉬나에서 시작되는 사제 전수 계보에 속한 위대한 스승, 스릴라 발라데바 비댜부샤나는 이 장에 대한 자신의 논평을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결론 맺는다.
얏-착띠-레샷 수리아디아 yac-chakti-leśāt sūryādyā
바반띠 아뜌그라-떼자사하 bhavanty aty-ugra-tejasaḥ
야담세나 드리땀 비스밤 yad-aṁśena dhṛtaṁ viśvaṁ
사 끄리쉬노 다샤메’르쨔떼 sa kṛṣṇo daśame ’rcyate
주 끄리쉬나의 강력한 에너지로부터 강한 태양조차 힘을 얻고, 끄리쉬나의 부분적 확장으로 전 세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스리 끄리쉬나는 숭배받아 마땅하다.
이로써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따의 제10장, 절대자의 풍요에 대한 박띠베단따 주석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