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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꾸룩쉐뜨라 전쟁터에 모인 군대의 관찰

원문

드리따라쉬뜨라 우바짜 dhṛtarāṣṭra uvāca
다르막-쉐뜨레 꾸룩-쉐뜨레 dharma-kṣetre kuru-kṣetre
사마베따 유윳사바하 samavetā yuyutsavaḥ
마마까 빤다바스 짜이바 māmakāḥ pāṇḍavāś caiva
끼마꾸르바따 산자야 kim akurvata sañjaya

동의어

드리따라쉬뜨라 우바짜: 드리따라쉬뜨라 왕이 말했다, 다르마-끄쉐뜨레: 성지순례의 장소에서: 꾸루-끄쉐뜨레: ‘꾸룩쉐뜨라’라는 곳에서, 사마베따하: 모였다, 유윳사바하: 싸우고자 하는, 마마까하: 나의 진영(나의 아들들), 빤다바하: 빤두의 아들들, 짜: 그리고, 에바: 분명히, 낌: 무엇, 아꾸르바따: 했는가, 산자야: 오 산자야여.

번역

드리따라쉬뜨라가 말했습니다: 오 산자야여, 전쟁을 치르고자 꾸룩쉐뜨라의 성지에 모인 나의 아들들과 빤두의 아들들이 무엇을 했는가?

주석

바가바드 기따는 기따 마하뜨먀(기따에 대한 찬송)에 요약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유신론의 과학이다. 거기서 말하기를, 스리 끄리쉬나 헌애자의 도움을 받아 아주 세밀하게 바가바드 기따를 읽어야 하고 사적 동기에서 비롯된 해석 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에 대한 명확한 실례는 바로 바가바드 기따 안에 있는데, 바로 아르주나가 주께 직접 기따를 듣고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만일 자기 방식의 해석 없이 사제 전수의 계통 안에서 바가바드 기따를 이해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베다의 지혜는 물론이고 세계 모든 경전에 관한 연구를 능가할 수 있다. 바가바드 기따 안에서 다른 경전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없는 것들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따의 특별한 점이다. 기따는 최고 인격신, 주 스리 끄리쉬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완벽한 유신론의 과학이다.

마하바라따에 묘사된 것처럼 드리따라쉬뜨라와 산자야가 논의한 주제들이 위대한 이 철학의 기본 원칙이다. 이 철학은 태초의 베다 시대 때부터 신성한 성지순례지로 알려진 꾸룩쉐뜨라 전쟁터에서 전개되었다. 기따는 주께서 인류를 인도하시고자 이 지구에 몸소 계셨을 때 하신 말씀이다.

다르막쉐뜨라(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라는 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꾸룩쉐뜨라 전쟁터에서 최고 인격신께서 아르주나 측에 계셨기 때문이다. 꾸루들(Kurus)의 아버지, 드리따라쉬뜨라는 자기 아들들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한 의심을 한 상태에서 그는 비서인 산자야에게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자기 자식들과 자기 동생 빤두의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는 처참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꾸룩쉐뜨라의 전장에 모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질문을 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기 자식들이 조카들과 타협하기보다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기를 원했다. 한편, 베다에서 성지로 언급되며 천국의 거주자들조차 숭배하는 꾸룩쉐뜨라에서 전쟁을 치르게 되었기에 드리따라쉬뜨라는 성지가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매우 두려워했다. 아르주나와 빤두의 아들들은 천성적으로 모두 덕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성지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산자야는 비아사의 제자로서, 비아사의 은총으로 드리따라쉬뜨라의 방안에 있으면서도 꾸룩쉐뜨라 전쟁터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드리따라쉬뜨라가 산자야에게 전쟁의 상황에 관해 물은 것이다.

빤다바(빤두의 아들들)나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은 모두 한 가족이지만, 드리따라쉬뜨라의 마음은 서로를 달리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꾸루들만을 자기 아들로 주장하고, 빤두의 아들은 모두 가문에서 분리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조카들인 빤두의 아들들을 향한 드리따라쉬뜨라의 분명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종교의 아버지, 스리 끄리쉬나가 계신 꾸룩쉐뜨라의 성지에서, 잡초 같은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 듀로다나와 같은 편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이 완전히 제거되고, 유디쉬티라를 필두로 한 완벽히 종교적인 사람들이 올바른 위치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시작부터 예견된다. 역사적, 베다 문화적 중요성과 별도로 “다르막쉐뜨레”와 “꾸룩쉐뜨레”라는 단어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원문

산자야 우바짜 sañjaya uvāca
드리쉬뜨바 뚜 빤다바니깜 dṛṣṭvā tu pāṇḍavānīkaṁ
뷰담 두료다나스 따다 vyūḍhaṁ duryodhanas tadā
아짜럄 우빠상감야 ācāryam upasaṅgamya
라자 바짜남 아브라빗 rājā vacanam abravīt

동의어

산자야 우바짜: 산자야가 말했다, 드리쉬뜨바: 본 후에, 뚜: 그러나, 빤다바-아니깜: 빤다바의 군인들, 뷰담: 군대가 결집한, 두료다나하: 듀로다나 왕, 따다: 바로 그때, 아짜럄: 스승, 우빠상감야: 다가가서, 라자: 왕: 바짜남: 말, 아브라빗: 말했다.

번역

산자야가 말했다: 오 왕이시여, 듀로다나 왕은 전열을 갖춘 빤두 아들들의 군대를 살펴 본 다음, 그의 스승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석

드리따라쉬뜨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불행히도 그는 영적 시력마저도 잃고 말았다. 그는 자기 아들들 모두 종교에 관한 한, 장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신앙심이 무척 깊은 빤다바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지의 힘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고, 산자야는 전쟁터의 상황에 관해 묻는 드리따라쉬뜨라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산자야는 의기소침한 왕의 기운을 북돋우고자 왕의 아들들이 성지의 영향으로 말미암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따라서 산자야는 드리따라쉬뜨라 왕에게 그의 아들 듀로다나가 빤다바들의 군사력을 본 다음, 즉시 사령관 드로나짜리아(Droṇācārya)에게 가 실제 정황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비록 듀로다나가 왕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의 막중함 때문에 여전히 사령관에게 가봐야만 했다. 그러므로 듀로다나는 정치가로 꽤 적합하다. 하지만 듀로다나의 외교적 허식이 빤다바들의 군사적 포진을 보고 난 후 그가 느낀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원문

빠샤이땀 빤두-뿌뜨라남 paśyaitāṁ pāṇḍu-putrānām
아짜랴 마하띰 짜뭄 ācārya mahatīṁ camūm
뷰담 드루빠다-뿌뜨레나 vyūḍhāṁ drupada-putreṇa
따바 시쉐나 디마따 tava śiṣyeṇa dhīmatā

동의어

빠샤: 보아라, 에땀: 이것, 빤두-뿌뜨라남: 빤두의 아들들, 아짜랴: 오 스승이시여, 마하띰: 위대한, 짜뭄: 군사력, 뷰담: 배치된, 드루빠다-뿌뜨레나: 드루빠다의 아들, 따바: 당신의, 시쉐나: 제자, 디-마따: 아주 영리한.

번역

오 스승님, 드루빠다의 아들, 당신의 아주 영리한 제자가 능숙하게 배치한 빤두 아들들의 훌륭한 군대를 보십시오.

주석

훌륭한 외교가인 듀로다나는 위대한 브라흐마나이자 사령관인 드로나짜리아의 실수를 여기서 지적하려고 하고 있다. 드로나짜리아는 아르주나의 부인, 드라우빠디의 아버지인 드루빠다 왕과 정치적 분쟁이 있었다. 이 분쟁의 결과로, 드루빠다는 큰 제식을 올리게 되고, 그 결과 드로나짜리아를 죽일 수 있는 아들을 갖게 되는 축복을 받았다. 드로나짜리아는 이 사실을 완벽히 알고 있었지만 대범한 브라흐마나인 그는 드루빠다의 아들, 드리쉬따듐나(Dhṛṣṭadyumna)의 군사교육을 위탁받았을 때 주저함 없이 그가 가진 모든 군사적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이제 꾸룩쉐뜨라 전쟁터에서 드리쉬따듐나는 빤다바들의 편에 섰고 바로 그가 드로나짜리아에게서 군사 비법을 배운 후 군대를 포진했다. 듀로다나는 드로나짜리아의 이 실수를 지적해 그가 전투에서 방심하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기를 원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듀로다나는 드로나짜리아가 아끼는 제자들이기도 한 빤다바에 대항한 이 전투에서 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지적하고자 했다. 특히 아르주나는 드로나짜리아가 가장 아끼는 훌륭한 제자였다. 듀로다나는 드로나짜리아의 그러한 관대함이 전투에서는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경고했다.

원문

아뜨라 슈라 마헤쉬바사 atra śūrā maheṣv-āsā
비마르주나-사마 유디 bhīmārjuna-samā yudhi
유유다노 비라따스짜 yuyudhāno virāṭaś ca
드루빠다스짜 마하-라타하 drupadaś ca mahā-rathaḥ

동의어

아뜨라: 여기, 슈라하: 영웅들, 마하-이슈-아사하: 활쏘기의 달인, 비마-아르주나: 비마와 아르주나에게, 사마하: 동등한, 유디: 싸움에서, 유유다나하: 유유다나, 비라따하: 비라따, 짜: 또한, 드루빠다하: 드루빠다,  짜: 또한, 마하-라타하: 훌륭한 투사(鬪士).

번역

이 군대에는 비마와 아르주나에 필적하는 사수의 영웅이 많이 있는데, 유유다나와 비라따, 그리고 드루빠다와 같은 위대한 전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주석

드리쉬따듐나가 군사 기법으로 봐서 드로나짜리아의 강력한 힘과 맞설 때 몹시 어려운 장애물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을 유발할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비마와 아르주나처럼 만만찮은 존재였고, 듀로다나는 그들이 승리의 길에 놓인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마와 아르주나의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그들과 비교했다.

원문

드리쉬따께뚜스 쩨끼따나하 dhṛṣṭaketuś cekitānaḥ
까쉬라자스 짜 비르야반 kāśirājaś ca vīryavān
뿌루짓 꾼띠보자스 짜 purujit kuntibhojaś ca
샤이뱌스짜 나라-뿡가바하 śaibyaś ca nara-puṅgavaḥ

동의어

드리쉬따께뚜: 드리쉬따께뚜, 쩨끼따나하: 쩨끼따나, 까쉬라자하: 까쉬라자, 짜: 또한, 비르야-반: 매우 강력한, 뿌루짓:뿌루짓, 꾼띠보자하: 꾼띠보자, 짜: 그리고, 샤이뱌하: 샤이뱌, 짜: 그리고, 나라-뿡가바하: 인간 사회의 영웅.

번역

또한 드리쉬따께뚜, 쩨끼따나, 까쉬라자, 뿌루짓, 꾼띠보자, 샤이뱌 같이 위대하고 용감하며 강력한 전사들이 있습니다.

원문

유다만유스 짜 비끄란따 yudhāmanyuś ca vikrānta
웃따마우자스 짜 비르야반 uttamaujāś ca vīryavān
사우바드로 드라우빠데야스 짜 saubhadro draupadeyāś ca
사르바 에바 마하-라타하 sarva eva mahā-rathāḥ

동의어

유다만유후: 유다만유, 짜:그리고, 비끄란따하:힘센, 웃따마우자하: 웃따마우자, 짜:그리고, 비르야-반: 아주 강력한, 사우바드라하: 수바드라의 아들, 드라우빠데야하: 드라우빠디의 아들들, 짜: 그리고, 사르베: 모두, 에바: 확실히, 마하-라타하: 위대한 마차 전사들.

번역

힘센 유다만유, 매우 강력한 웃따마우자, 수바드라의 아들, 드라우빠디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이 전사들은 모두 위대한 마차 무사들입니다.

원문

아스마깜 뚜 비시쉬따 예 asmākaṁ tu viśiṣṭā ye
딴 니보다 드비좃따마 tān nibodha dvijottama
나야까 마마 샤인야샤 nāyakā mama sainyasya
상갸르탐 딴 브라비미 떼 saṁjñārthaṁ tān bravīmi te

동의어

아스마깜: 우리의, 뚜: 그러나, 비시쉬따하: 특히 강력한, 예: 누구, 딴: 그들, 니보다: 주시하다(알게 되다), 드비자-우따마: 오 최고의 브라흐마나여, 나야까하: 장군들, 마마: 나의, 샤인야샤: 군사들, 상갸-아르탐: 정보를 위해, 딴: 그들, 브라비미: 나는 말하고 있다, 떼: 당신께.

번역

그러나 오! 최고의 브라흐마나여, 이제 제 군대를 지휘할 특출한 장군들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원문

바반 비쉬마스 짜 까르나스짜 bhavān bhīṣmaś ca karṇaś ca
끄리빠스 짜 사미띰-자야하 kṛpaś ca samitiṁ-jayaḥ
아스밧타마 비까르나스 짜 aśvatthāmā vikarṇaś ca
사우마닷띠스 따타이바 짜 saumadattis tathaiva ca

동의어

바반: 바로 당신, 비쉬마하: 비쉬마 할아버지, 짜: 또한, 까르나하: 까르나, 짜: 그리고, 끄리빠하: 끄리빠, 짜: 그리고, 사미띰-자야하: 전투에서 항상 승리하는, 아스밧타마: 아스밧타마, 비까르나하: 비까르나, 짜: 마찬가지로, 사우마닷띠히: 소마닷따의 아들, 따타: 는 물론이고, 에바: 확실히, 짜: 또한.

번역

당신처럼 전투에서 항상 승리하는 분들, 비쉬마, 까르나, 끄리빠, 아스밧타마, 비까르나, 소마닷따의 아들인 부리스라바가 우리 진영에 있습니다.

주석

듀로다나는 전투에서 항상 승리하는 훌륭한 영웅들을 언급하고 있다. 비까르나는 듀로다나의 동생이고 아스밧타마는 드로나짜리아의 아들이며 사우마닷띠, 즉 부리스라바는 바흘리까스 왕의 아들이다. 까르나는 꾼띠가 빤두 왕과 결혼하기 전에 출생했으므로 아르주나의 이복형제이다. 끄리빠짜리아의 쌍둥이 여동생이 드로나짜리아와 결혼했다.

원문

안예 짜 바하바 슈라 anye ca bahavaḥ śūrā
마다르테 땩따-지비따하 mad-arthe tyakta-jīvitāḥ
나나-샤스뜨라-쁘라하라나하 nānā-śastra-praharaṇāḥ
사르베 윧다-비샤라다하 sarve yuddha-viśāradāḥ

동의어

안예: 다른 사람들, 짜: 또한, 바하바하: 상당히 많은, 슈라: 영웅들, 맛-아르테: 나를 위해서, 땩따-지비따하: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는, 나나: 여러, 샤스뜨라: 무기, 쁘라하라나하: 무장한, 사르베: 그들 모두, 윧다-비샤라다: 군사 전략에 경험이 많은.

번역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된 다른 영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종류의 무기로 잘 무장되어 있고, 군사 전략에 관해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주석

자야드라타, 끄리따바르마, 샬야와 같은 다른 장수들 모두 듀로다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모두 죄 많은 듀로다나 측에 가담함으로써 꾸룩쉐뜨라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 듀로다나는 물론, 위에 언급된 동료들의 합동 군사력 덕분에 승리를 자신했다.

원문

아빠르얍땀 따다스마깜 aparyāptaṁ tad asmākaṁ
발람 비쉬마비락쉬땀 balaṁ bhīṣmābhirakṣitam
빠르얍땀 뜨비다메떼샴 paryāptaṁ tv idam eteṣāṁ
발람 비마비락쉬땀 balaṁ bhīmābhirakṣitam

동의어

아빠르얍땀: 헤아릴 수 없는, 땃: 그것, 아스마깜: 우리들의, 발람: 힘, 비쉬마: 비쉬마 할아버지에 의해, 아비락쉬땀: 완전히 보호된, 빠르얍땀: 제한된, 뚜: 그러나, 이담: 이 모든 것, 에떼샴: 빤다바들의, 발람: 힘, 비마: 비마, 아비락쉬땀: 잘 보호된.

번역

우리들의 힘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우리는 비쉬마 할아버지께서 완벽히 보호하고 계신 데 반해, 빤다바들은 비마가 신중히 보호하고 있지만 그들의 힘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주석

여기에서 듀로다나는 힘을 상대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그는 가장 경험 많은 장군, 비쉬마 할아버지가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자기 군대의 힘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비쉬마 앞에서는 하찮고, 경험이 부족한 장군 비마가 보호하고 있는 빤다바들의 힘은 유한하다고 생각한다. 듀로다나는 만약 자기가 죽는다면 비마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비마를 시기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훨씬 뛰어난 장군인 비쉬마가 있기에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그의 믿음은 매우 확고했다.

원문

아야네슈 짜 사르베슈 ayaneṣu ca sarveṣu
야타-바감 아바스티따하 yathā-bhāgam avasthitāḥ
비쉬맘 에바비락샨뚜 bhīṣmam evābhirakṣantu
바반따 사르바 에바 히 bhavantaḥ sarva eva hi

동의어

아야네슈: 전략적 지점들, 짜: 또한, 사르베슈: 모든 곳, 야타바감: 다르게 배치된, 아바스티따하: 위치한, 비쉬맘: 비쉬마 할아버지께, 에바: 확실히, 아비락샨뚜: 지원해야한다, 바반따하: 너희들, 사르베: 모두 각자, 에바 히: 확실히.

번역

여러분들 모두 각자 포진한대로 전략적 지점을 사수하면서 이제 비쉬마 할아버지를 전적으로 지원하시오.

주석

비쉬마의 용맹을 칭송한 후, 듀로다나는 다른 장수들이 자기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고려해, 평소와 같은 외교적 수완으로 위와 같은 말을 하여 상황을 조정하려 했다. 그는 비쉬마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위대한 영웅이기는 하나, 고령이기 때문에 모두 사방에서 그를 보호해야 함을 특히 유념할 것을 강조했다. 비쉬마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가 한 곳에만 몰두하고 있는 점을 적이 이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른 장수들이 자신의 전략적 위치를 떠나지 않고 적이 포진을 뚫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듀로다나는 특히 꾸루의 승리가 비쉬마의 존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르주나의 아내 드라우빠디가 모든 장수가 모인 곳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게 되는 무력한 상황에서 비쉬마와 드로나짜리아에게 정의를 호소했을 때 그들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기에 전쟁에서 비쉬마데바와 드로나짜리아의 완전한 지원을 확신했다. 듀로다나는 이 두 장군이 빤다바들에게 일종의 애정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내기 시합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애정을 완전히 버리기를 바랐다.

원문

따샤 산자나얀 하르샴 tasya sañjanayan harṣaṁ
꾸루-브릳다 삐따마하하 kuru-vṛddhaḥ pitāmahaḥ
심하-나담 비나둇짜이히 siṁha-nādaṁ vinadyoccaiḥ
샹캄 닫마우 쁘라따빠반 śaṅkhaṁ dadhmau pratāpavān

동의어

따샤: 그의, 산자나얀: 증가하는, 하르샴: 쾌활함, 꾸루-브릳다하: 꾸루 왕조의 조부(비쉬마), 삐따마하: 할아버지, 심하-나담: 사자의 포효 소리 같은, 비나댜: 울려 퍼지는: 웃짜이, 아주 크게, 샹캄: 소라 나팔, 닷마우: 불었다, 쁘라따빠-반: 용감한 자.

번역

그런 다음 꾸루 왕조의 위대하고 용감한 조부, 모든 장수의 수장 비쉬마가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듯 그의 소라 나팔을 크게 불자 듀로다나가 기뻐했습니다.

주석

꾸루 왕조의 수장인 비쉬마는 그의 손자 듀로다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당연한 연민에, 사자 같은 본인의 위치에 합당한 소라 나팔을 크게 불어 듀로다나의 기운을 북돋우려 했다. 간접적으로 기죽은 자기 손자 듀로다나에게 소라 나팔 상징을 통해 지고한 주 끄리쉬나가 반대편에 계시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하는 것은 비쉬마의 의무였고 이와 관련된 어떠한 고통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원문

따따 샹카스짜 베르야스짜 tataḥ śaṅkhāś ca bheryaś ca
빠나바나까-고무카하 paṇavānaka-gomukhāḥ
사하사이바뱌한얀따 sahasaivābhyahanyanta
사 샤브다스뚜물로바밧 sa śabdas tumulo ’bhavat

동의어

따따: 그 이후, 샹카하: 소라 나팔들, 짜: 또한, 베르야하: 큰 북들, 짜: 그리고, 빠나바-아나까: 작은 북들과 케틀드럼들, 고-무카하: 뿔 나팔들, 사하사: 갑자기, 에바: 확실히, 아뱌한얀따, 동시에 소리가 났다, 사하: 그것, 샤브다하: 합쳐진 소리, 뚜물라하: 떠들석한, 아바밧: 되었다.

번역

그러고 나서 갑자기 소라 나팔, 북, 군대 나팔, 트럼펫, 뿔 나팔들이 일제히 소리를 울렸고, 그 합쳐진 소리가 떠들썩했습니다.

원문

따따 스베따이르 하야이륙떼 tataḥ śvetair hayair yukte
마하띠 스얀다네 스티따우 mahati syandane sthitau
마다바 빤다바스짜이바 mādhavaḥ pāṇḍavaś caiva
디뱌우 샹카우 쁘라닫마뚜후 divyau śaṅkhau pradadhmatuḥ

동의어

따따하: 그리고 나서, 스베따이: 하얗게, 하야이: 말들, 육떼: 멍에로 연결된, 마하띠: 위대한, 스얀다네: 마차, 스티따우: 위치한, 마다바하: 끄리쉬나(행운의 여신의 남편), 빤다바하: 아르주나(빤두의 아들), 짜: 또한, 에바: 확실히, 디뱌우: 초월적인, 샹카우: 소라 나팔, 쁘라닫마뚜후: 울렸다.

번역

반대편에서 흰 말들이 이끄는 멋진 마차 위에 올라타고 계신 주 끄리쉬나와 아르주나도 그들의 초월적인 소라 나팔을 불었습니다.

주석

비쉬마가 분 소라 나팔과는 대조적으로, 끄리쉬나와 아르주나의 손에 들린 소라 나팔은 초월적이라고 묘사되었다. 초월적인 소라 나팔 소리는 상대편이 승리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그 이유는 끄리쉬나께서 빤다바들의 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자야스 뚜 빤두-뿌뜨라남 예삼 빡쉐 자나르다나(Jayas tu pāṇḍu-putrāṇāṁ yeṣāṁ pakṣe janārdanaḥ).” 승리는 항상 빤두 아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으로 주 끄리쉬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행운의 여신은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법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주가 계신 곳에는 항상 행운의 여신이 같이 계신다. 그러므로 비쉬누, 즉 주 끄리쉬나의 초월적인 소라 나팔 소리가 가리키듯이 승리와 행운이 아르주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두 친구가 타고 있는 마차는 불의 신, 아그니(Agni)가 선물한 것으로, 이는 이 마차가 삼계(三界)의 어디든지 달려가 정복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원문

빤짜잔얌 흐리쉬께쇼 pāñcajanyaṁ hṛṣīkeśo
데바닷땀 다난자야하 devadattaṁ dhanañ-jayaḥ
빠운드람 닫마우 마하-샹캄 pauṇḍraṁ dadhmau mahā-śaṅkhaṁ
비마-까르마 브리꼬다라하 bhīma-karmā vṛkodaraḥ

동의어

빤짜잔얌: 빤짜잔야라는 이름의 소라 나팔, 흐리쉬까-이샤하: 흐리쉬께샤(헌애자들의 감각을 감독하는 주 끄리쉬나), 데바닷땀: 데바닷따라는 이름의 소라 나팔, 다남-자야하: 다난자야(부의 정복자라는 뜻, 아르주나의 다른 이름), 빠운드람: 빠운드라라는 이름의 소라 나팔, 닷마우: 불었다, 마하-샹캄: 무시무시한 소라 나팔, 비마-까르마: 대단히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자, 브리까-우다라하: 왕성한 식욕을 가진 자(비마).

번역

주 끄리쉬나께서는 빤짜잔야라는 당신의 소라 나팔을 부셨고 아르주나는 데바닷따를, 식욕이 왕성하고 초인적인 일도 수행해내는 비마는 무시무시한 소라 나팔, 빠운드라를 불었습니다.

주석

주 끄리쉬나가 바로 모든 감각의 주인이므로 이 절에서 주를 흐리쉬께샤(Hṛṣīkeśa)라고 부르고 있다. 생명체는 주의 작은 일부이므로 생명체의 감각 또한 주가 지닌 감각의 일부이다. 비인성주의자들은 생명체의 감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모든 생명체를 늘 감각이 없는 비인성적이라고 묘사하고 싶어 한다. 모든 생명체의 가슴속에 계시는 주께서 바로 우리의 감각을 감독하신다. 그러나 주께서는 생명체가 주께 어느 정도 자신을 바치는지, 그 정도에 따라 지도하시며 순수한 헌애자의 경우 당신께서 직접 그들의 감각을 주관하신다. 여기 꾸룩쉐뜨라 전쟁터에서 주가 직접 아르주나의 초월적 감각을 통제하시므로 주의 이름을 특정적으로 흐리쉬께샤라고 부른다. 주는 여러 다양한 활약에 따라 그에 맞는 특별한 호칭을 갖고 계신다. 예를 들어, 마두수다나(Madhusūdana)라는 이름은 주께서 마두라는 악마를 죽이셨기 때문이고, 고빈다(Govinda)라는 이름은 주께서 소(牛)와 감각에 즐거움을 주시기 때문이고, 바아수데바(Vāsudeva)라는 이름은 주께서 바수데바(Vasudeva)의 아들로 강림하셨기 때문이고, 데바끼-난다나(Devakī-nandana)라는 이름은 주께서 데바끼(Devakī)를 어머니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야쇼다-난다나(Yaśodā-nandana)라는 이름은 브린다반에서 당신의 어린 시절 유희를 야쇼다에게 선사했기 때문이며 빠르타-사라티(Pārtha-sārathi)라는 이름은 당신께서 친구 아르주나의 마차꾼 역할을 맡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께서 꾸룩쉐뜨라 전쟁터에서 아르주나를 지도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이름이 흐리쉬께샤이다.

이 절에서 아르주나가 다난쟈야(Dhanañjaya)로 불리는 이유는 그의 형이 여러 제식을 치르는 비용이 필요했을 때 아르주나가 그 비용을 충당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마가 브리꼬다라(Vṛkodara)라고 불리는 이유는 히딤바라는 악마를 죽이는 것과 같이 대단히 어려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만큼 식욕 또한 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에서 시작하여 빤다바 편에 있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분 독특한 소라 나팔은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는 이런 높은 사기도, 최고의 지도자 주 끄리쉬나도, 행운의 여신도 없다. 그래서 그들이 전투에서 패배할 것은 이미 운명지어졌으며 이것이 소라 나팔 소리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원문

아난따비자얌 라자 anantavijayaṁ rājā
꾼띠-뿌뜨로 유디스티라하 kuntī-putro yudhiṣṭhiraḥ
나꿀라 사하데바스짜 nakulaḥ sahadevaś ca
수고샤-마니뿌쉬빠까우 sughoṣa-maṇipuṣpakau
까샤스짜 빠라메쉬바사하 kāśyaś ca parameṣv-āsaḥ
시칸디 짜 마하-라타하 śikhaṇḍī ca mahā-rathaḥ
드리쉬따듐노 비라따스짜 dhṛṣṭadyumno virāṭaś ca
사땨끼스 짜빠라지따하 sātyakiś cāparājitaḥ
드루빠도 드라우빠데야스짜 drupado draupadeyāś ca
사르바샤 쁘리티비-빠떼 sarvaśaḥ pṛthivī-pate
사우바드라스짜 마하-바후후 saubhadraś ca mahā-bāhuḥ
샹칸 닫무 쁘리탁 쁘리탁 śaṅkhān dadhmuḥ pṛthak pṛthak

동의어

아난따-비자얌: 아난따-비자야라는 이름의 소라 나팔, 라자: 왕, 꾼띠-뿌뜨라하: 꾼띠의 아들, 유디쉬티라하: 유디쉬티라, 나꿀라하: 나꿀라, 사하데바하: 사하데바, 짜: 그리고, 수고샤-마니뿌쉬빠까우: 수고샤와 마니뿌쉬빠까라는 이름의 소라 나팔, 까샤: 까시(현재의 바라나시) 땅의 왕, 짜: 그리고, 빠람-이슈-아사하: 위대한 궁수, 시칸디: 시칸디, 짜: 또한, 마하-라타하: 혼자서 천 명과 싸울 수 있는 장수, 드리쉬따듐나하: 드리쉬따듐나(드루빠다 왕의 아들), 비라따하: 비라따(빤다바들이 숨어 지낼 동안 그들을 도운 왕자), 짜: 또한, 사땨끼히: 사땨끼(끄리쉬나의 마부, 유유다나의 다른 이름), 짜: 그리고, 아빠라지따하: 절대 패배한 적이 없는, 드루빠다하: 빤짤라 땅의 왕(두루빠다), 드라우빠데야하: 드라우빠디의 아들들, 짜: 또한, 사르바샤하: 모든, 쁘리티비-빠떼: 오 왕이시여, 사우바드라하: 수바드라의 아들(아비만유), 짜: 또한, 마하-바후: 강력히 무장한, 샹칸: 소라 나팔, 닫무후: 불었다, 쁘리탁 쁘리탁: 모두 각각.

번역

오 왕이시여, 꾼띠의 아들 유디쉬티라 왕은 그의 소라 나팔 아난따 비자야를 불었고, 나꿀라와 사하데바는 수고샤와 마니뿌쉬빠까를 불었습니다. 위대한 궁수 까시의 왕, 위대한 전사 시칸디, 드리쉬따듐나, 비라따, 무적의 사땨끼, 드루빠다, 드라우빠디의 아들들, 강력히 무장한 수바드라의 아들과 다른 장수들도 각자 그들의 소라 나팔을 불었습니다.

주석

산자야는 드리따라쉬뜨라 왕에게 빤두의 다섯 아들을 속이고,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자 하는 어리석은 정책이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재치있게 알렸다. 꾸루 왕조 전체가 이 대전에서 몰살할 것이라는 징조는 이미 분명히 나타났다. 조부 비쉬마에서 시작하여 아비만유 같은 손자나 전 세계에서 모인 왕들을 포함한 그곳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이 죽을 운명이었다. 이 큰 재앙은 자기 아들의 계략을 지지한 드리따라쉬뜨라 왕 때문이었다.

원문

사 고쇼 다르따라쉬뜨라남 sa ghoṣo dhārtarāṣṭrāṇāṁ
흐리다야니 뱌다라얏 hṛdayāni vyadārayat
나바스짜 쁘리티빔 짜이바 nabhaś ca pṛthivīṁ caiva
뚜물로 뱌누나다얀 tumulo ’bhyanunādayan

동의어

사하: 그것, 고샤하: 진동, 다르따라쉬뜨라남: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 흐리다야니: 심장, 뱌다라얏: 산산이 부수다, 나바하: 하늘, 짜: 또한, 쁘리티빔:지구의 표면, 짜: 또한, 에바: 확실히, 뚜물라하: 몹시 시끄러운, 아뱌누나다얀: 울려 퍼지는.

번역

이 서로 다른 소라 나팔 소리가 폭발적으로 들렸습니다. 하늘과 땅을 진동하는 그 소리는 드리따라쉬뜨라 아들들의 심장을 산산이 조각내었습니다.

주석

듀로다나 측의 비쉬마와 다른 장수들이 소라 나팔을 불었을 때, 빤다바들 측에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었고 언급조차 되지 않았지만, 특히 이 절에서 드리따라쉬뜨라 아들들의 심장이 빤다바 측이 생성한 소리 진동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고 언급되었다. 이런 현상은 빤다바들이 가진 주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지고한 주께 은신하는 자는 아무리 큰 재앙이 닥쳐도 두려운 것이 없다.

원문

아타 뱌바스티딴 드리쉬뜨바 atha vyavasthitān dṛṣṭvā
다르따라쉬뜨란 까삐-드바자하 dhārtarāṣṭrān kapi-dhvajaḥ
쁘라브릿떼 샤스뜨라-삼빠떼 pravṛtte śastra-sampāte
다누루댬야 빤다바하 dhanur udyamya pāṇḍavaḥ
흐리쉬께샴 따다 바꺔 hṛṣīkeśaṁ tadā vākyam
이담아하 마히-빠떼 idam āha mahī-pate

동의어

아타: 그래서, 뱌바스티딴: 위치한, 드리쉬뜨바: 바라보며, 다르따라쉬뜨란: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 까삐-드바자하: 하누만이 새겨진 깃발을 가진 자, 쁘라브릿떼: 시작하기 전에, 샤스뜨라-삼빠떼: 활을 쏘는, 다누: 활, 우댬야: 잡아 드는, 빤다바하: 빤두의 아들(아르주나), 흐리쉬께샴: 주 끄리쉬나께, 따다: 바로 그때, 바꺔: 말, 이담: 이렇게, 아하: 말했다, 마히-빠떼: 오 왕이시여.

번역

바로 그때, 하누만이 새겨진 깃발이 달린 마차에 탄 빤두의 아들 아르주나가 활을 들어 화살을 쏠 준비를 했습니다. 오 왕이시여, 아르주나는 적진의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을 본 후, 주 끄리쉬나께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석

전투가 이제 막 시작할 찰나에 있다. 위 절에서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이 전쟁에서 주 끄리쉬나의 직접적 지시를 받는 빤다바들의 예기치 않은 군사력에 다소 기가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아르주나가 가지고 있는 하누만 깃발은 또 다른 승리의 상징인데, 그 이유는 주 라마(Rāma)와 라바나와의 전쟁에서 주 라마께서 하누만의 도움을 받아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제 라마와 하누만 모두 아르주나를 돕기 위해 마차 위에 있다. 주 끄리쉬나가 바로 라마이며, 주 라마께서 가시는 곳 어디에나 주의 종 하누만과 주의 영원한 배우자 시따(Sītā), 즉 행운의 여신이 함께한다. 그러므로 아르주나는 어떠한 적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감각의 주인, 주 끄리쉬나께서 아르주나를 지휘하시려고 몸소 나오셨다. 따라서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모든 자문을 아르주나는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주께서 당신의 영원한 헌애자를 위해 마련하신 이 모든 상서로운 상황은 보증된 승리의 징표이다.

원문

아르주나 우바짜 arjuna uvāca
세나요루바요르 마뎨 senayor ubhayor madhye
라탐 스타빠야 메’쮸따 rathaṁ sthāpaya me ’cyuta
야바데딴 니릭셰’함 yāvad etān nirīkṣe ’haṁ
욛두-까만 아바스티딴 yoddhu-kāmān avasthitān
까이르마야 사하 욛다뱜 kair mayā saha yoddhavyam
아스민 라나-사묻댜메 asmin raṇa-samudyame

동의어

아르주나 우바짜: 아르주나가 말했다, 세나요호: 군대 가운데, 우바요호: 양측, 마뎨: 사이에, 라탐: 마차, 스타빠야: 유지하시오, 메: 나의, 아쮸따: 오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여, 야밧: 하는 한, 에딴: 이 모든 것, 니릭셰: 볼 수도 있다, 아함: 나, 욛두-까만: 싸우고자 하는, 아바스티딴: 전쟁터에 배치한, 까이히: 누구와, 마야: 나에 의해, 사하: 함께, 욛다뱜: 싸워야 하는, 아스민: 여기에, 라나: 투쟁, 사묻댜메: 시도하는.

번역

아르주나가 말했습니다: 오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여, 싸우기를 원하는 자가 누군지, 이 큰 전쟁에서 맞서야 할 대상이 누군지 볼 수 있도록 제 마차를 전열을 갖추고 있는 양 군대 사이로 몰아 주소서.

주석

비록 주 끄리쉬나는 최고인격신이지만 당신의 원인 없는 자비심으로 당신의 친구를 위해 봉사하신다. 주는 당신의 헌애자에 대한 애정을 절대 저버리지 않으시므로 여기에서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주께서는 마부로서도 아르주나의 명령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에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불리고 있다. 비록 주께서 당신의 헌애자를 위해 마부의 역할을 맡으셨지만 주의 지고한 위치는 도전받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서 주는 최고인격신, 흐리쉬께샤, 즉 모든 감각의 주인이시다. 주와 당신의 종과의 관계는 매우 소중하고 초월적이다. 종은 항상 주께 봉헌할 준비가 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주께서도 헌애자에게 봉사할 기회를 항상 찾고 계신다. 주는 헌애자에게 명령을 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명령하는, 즉 더욱 유리한 역할을 떠맡은 헌애자에게서 더 큰 즐거움을 누리신다. 주가 주인이므로 모든 이가 주의 명령을 받지만, 그 누구도 주보다 높은 위치에서 주를 명령할 수 없다. 그러나 주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틀림이 없는 주인이라 할지라도, 순수한 헌애자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것을 보실 때 주는 초월적 즐거움을 느끼신다.

주의 순수한 헌애자로서 아르주나는 그의 형제 및 사촌들과 싸울 뜻이 없었지만 어떤 평화적 협상에도 동의하지 않는 듀로다나의 완고함 탓에 전쟁터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전쟁에 참전한 지휘관들이 누구인지 무척 보고 싶어 했다. 전쟁터에서 비록 화해를 위한 노력은 없겠지만 아르주나는 다시 한번 그들을 보고자 했으며, 원치 않는 전쟁을 그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요구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원문

욧샤마나나 벡쉐’함 yotsyamānān avekṣe ’haṁ
야 에 떼’뜨라 사마가따하 ya ete ’tra samāgatāḥ
다르따라쉬뜨라샤 두르붇데르 dhārtarāṣṭrasya durbuddher
윧데 쁘리야-찌끼르샤바하 yuddhe priya-cikīrṣavaḥ

동의어

욧샤마나난: 싸울 자, 아벡쉐: 어디 보자, 아함: 나, 예: 누구, 에떼: 그것들, 아뜨라: 여기, 사마가따하: 모였다, 다르따라쉬뜨라샤: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 두르붇데헤: 사악한 마음의, 윧데: 싸움에서, 쁘리야: 잘하는,  찌끼르샤바하: 희망하는.

번역

사악한 마음을 가진 드리따라쉬뜨라 아들의 환심을 사고자 전쟁을 하러 여기 모인 자들을 어디 보자.

주석

듀로다나가 그의 아버지 드리따라쉬뜨라와 합심하여 사악한 계략으로 빤다바들의 왕국을 강탈하고자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비밀이었다. 그러므로 듀로다나 측에 가담한 모든 사람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었음이 틀림없다. 아르주나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자 했을 뿐, 그들에게 평화 협상을 제안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끄리쉬나가 자기편에 있기에 아르주나는 승리를 아주 확신했지만 자기가 맞서야 할 적의 힘을 평가하고자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원문

산자야 우바짜 sañjaya uvāca
예바묵또 흐리쉬께쇼 evam ukto hṛṣīkeśo
구다께셰나 바라따 guḍākeśena bhārata
세나르요루빠요르마뎨 senayor ubhayor madhye
스타빠이뜨바 라톳따맘 sthāpayitvā rathottamam

동의어

산자야 우바짜: 산자야가 말했다, 에밤: 그래서, 욱타하: 말하다, 흐리쉬께샤하: 주 끄리쉬나, 구다께셰나: 아르주나에 의해, 바라따: 오 바라따의 후손이여, 세나요호: 군대의, 우바요호: 양쪽, 마뎨: 한가운데, 스타빠이뜨바: 배치하다, 라타-웃따맘: 멋진 마차.

번역

산자야가 말했습니다: 오 바라따의 후손이시여, 아르주나로부터 그 말을 듣고서, 주 끄리쉬나께서 그 멋진 마차를 양 군대의 한가운데로 몰았습니다.

주석

이 절에서 아르주나는 구다께샤(Guḍākeśa)로 언급되었다. 구다까는 잠을 의미하는데, 잠을 정복한 사람을 구다께샤라고 부른다. 잠은 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르주나는 끄리쉬나와 어울림으로써 잠과 무지를 둘 다 정복했다. 끄리쉬나의 위대한 헌애자로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끄리쉬나를 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헌애자가 지닌 본성이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주의 헌애자는 끄리쉬나의 이름, 형상, 특성, 유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끄리쉬나의 헌애자는 그저 계속해서 끄리쉬나를 생각함으로써 잠과 무지 둘 다를 정복할 수 있다. 이것을 바로 끄리쉬나 의식, 즉 사마디(samādhi)라고 부른다. 흐리쉬께샤, 즉 모든 생명체의 감각과 마음의 지휘자로서 끄리쉬나는 마차를 양 군대 한가운데로 몰아달라는 아르주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는 그렇게 한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원문

비쉬마-드로나-쁘라무카따하 bhīṣma-droṇa-pramukhataḥ
사르베샴 짜 마힉쉬땀 sarveṣāṁ ca mahī-kṣitām
우바짜 빠르타 빠샤이딴 uvāca pārtha paśyaitān
사마베딴 꾸루니띠 samavetān kurūn iti

동의어

비쉬마: 비쉬마 할아버지, 드로나: 스승 드로나, 쁘라무카따하: 앞에서, 사르베샴: 모두, 짜: 또한, 마힉-쉬땀: 세상의 우두머리, 우바짜: 말했다, 빠르타: 오 쁘리타의 아들이여, 빠샤: 그저 보아라, 에딴: 그들 모두, 사마베딴: 모였다, 꾸룬: 꾸루 왕조의 구성원들, 이띠: 따라서.

번역

비쉬마, 드로나와 세상의 여러 수장이 모두 모인 가운데,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 빠르타여, 꾸루 왕조 가문 전체가 여기 모인 것을 보아라”

주석

모든 생명체의 초영혼으로서 주 끄리쉬나는 아르주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으셨다. 이 점에서 흐리쉬께샤라는 단어의 사용은 주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꾼띠” 또는 “쁘리타의 아들”이라는 뜻의 “빠르타”라는 말은 아르주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르주나의 친구 역할을 하고 계신 주는 아르주나가 주(끄리쉬나)의 아버지인 바수데바의 여동생 쁘리타의 아들이기에 그의 마차꾼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셨다. 이제 끄리쉬나께서 아르주나에게 “꾸루들을 보아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르주나가 그곳에서 멈추고 싸우지 않길 원하셨다는 뜻인가? 끄리쉬나는 당신의 고모, 쁘리타의 아들에게서 결코 그러한 것을 기대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주께서 가벼운 농담을 통해 아르주나의 마음을 예견하고 계신 것이다.

원문

따뜨라빠샷 스티딴 빠르타하 tatrāpaśyat sthitān pārthaḥ
삐뜨리나타 삐따마한 pitṝn atha pitāmahān
아짜리얀 마뚤란 브라뜨린 ācāryān mātulān bhrātṝn
뿌뜨란 빠우뜨란 사킴스따타 putrān pautrān sakhīṁs tathā
스바슈란 수흐리다스 짜이바 śvaśurān suhṛdaś caiva
세나요루바요라삐 senayor ubhayor api

동의어

따뜨라: 그곳에, 아빠샷: 그는 볼 수 있었다, 스티딴: 서 있는, 빠르타하: 아르주,: 삐뜨린: 아버지들, 아타: 또한, 삐따마한: 할아버지들, 아짜리얀: 스승들, 마뚤란: 외삼촌들, 브라뜨린: 형제들, 뿌뜨란: 아들들, 빠우뜨란: 손자들, 사킨: 친구들, 따타: ~도, 스바슈란: 장인어른들, 수흐리다하: 후원자들, 짜: 또한, 에바: 분명히, 세나요호: 군대에서, 우바요호: 양쪽 모두, 아삐: 포함해서.

번역

양쪽 군대에 모인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아르주나는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스승들, 외삼촌들, 형제들, 아들과 손자들, 친구들, 그리고 장인들과 후원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석

전쟁터에서 아르주나는 모든 종류의 친인척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같은 연배인 부리스라바 같은 사람을 비롯하여 비쉬마와 소마닷따 할아버지, 드로나짜리아와 끄리빠짜리야 같은 스승들, 샬랴와 샤꾸니 같은 외삼촌들, 듀로다나 같은 사촌 형제들, 락쉬마나 같은 아들, 아스밧따마 같은 친구들, 끄리따바르마 같이 평소 아르주나가 잘되기를 바라던 사람 등을 보게 되었다. 그는 자기 친구들 여러 명이 참가하고 있는 군대도 보았다.

원문

딴사믹샤사 까운떼야하 tān samīkṣya sa kaunteyaḥ
사르반 반두나바스티딴 sarvān bandhūn avasthitān
끄리빠야 빠라야비쉬또 kṛpayā parayāviṣṭo
비쉬단니담 아브라빗 viṣīdann idam abravīt

동의어

딴: 그들 모두, 사믹샤: 보고 난 후, 사하: 그는, 까운떼야하: 꾼띠의 아들, 사르반: 모든 종류의, 반둔: 친인척들, 아바스티딴: 위치한, 끄리빠야: 측은히 여겨, 빠라야: 높은 위치의, 아비쉬따하: 압도된, 비쉬단: 한탄하던 중, 이담: 따라서, 아브라빗:말했다.

번역

꾼띠의 아들인 아르주나가 이 모든 친구 및 친척들을 보았을 때 동정심에 압도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원문

아르주나 우바짜 arjuna uvāca
드리쉬뜨베맘 스바-자남 끄리쉬나 dṛṣṭvemaṁ sva-janaṁ kṛṣṇa
유윳숨 삼우빠스티땀 yuyutsuṁ samupasthitam
시단띠 마마 가뜨라니 sīdanti mama gātrāṇi
무캄 짜 빠리슈샤띠 mukhaṁ ca pariśuṣyati

동의어

아르주나 우바짜: 아르주나가 말했다, 드리쉬뜨바: 보고 난 후, 이맘: 이 모든, 스바자남: 친인척들, 끄리쉬나: 오 끄리쉬나, 유윳숨: 싸울 기세를 한 모든 사람, 삼우빠스티땀: 가담한, 시단띠: 떨고 있는, 마마: 나의, 가뜨라니: 사지(四肢), 무캄: 입, 짜: 또한, 빠리슈샤띠: ~이 마르고 있다.

번역

아르주나가 말했습니다: 오 소중한 끄리쉬나여, 제 앞에서 싸울 기세로 모인 친구들 및 친척들을 보고 나니, 사지가 떨리고 입이 타들어 갑니다.

주석

주를 향한 진정한 헌애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성자나 데바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비헌애자들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 물질적으로 앞서 있더라도 성자의 자질이 부족하다. 아르주나는 싸울 결심으로 전쟁터에 나온 자기 친구들과 친인척들을 보고 난 후 그들을 향한 동정심에 사로잡혔다. 자기 병사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측은히 여겼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을 예견했기에 적의 병사들에게마저 동정심을 느꼈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그의 사지가 떨리기 시작했고 입이 마르게 되었다. 아르주나는 그들의 싸울 기세를 보고서 다소 놀랐다. 사실 아르주나의 혈족 전체가 그에게 맞서 싸우러 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아르주나같이 착한 헌애자를 주눅들게 했다. 비록 여기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르주나는 사지가 떨리고 입이 말랐을 뿐만 아니라, 동정심에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르주나의 이런 징후는 그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주의 순수한 헌애자가 지닌 특성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야샤아띠 박띠르 바가바땨낀짜나 yasyāsti bhaktir bhagavaty akiñcanā
사르바이르 구나이스 따뜨라 사마사떼 수라하 sarvair guṇais tatra samāsate surāḥ
하라바박따샤 꾸또 마핟-구나 harāv abhaktasya kuto mahad-guṇā
마노-라테나사띠 다바또 바히히 mano-rathenāsati dhāvato bahiḥ

“최고인격신을 향해 굽힘 없이 헌애하는 자는 데바들의 좋은 성품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주의 헌애자가 아닌 자는 가치없는 물질적 자질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그런 자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매달려 현란한 물질적 에너지의 유혹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리마드 바가바땀 5.18.12)

원문

베빠투스짜 샤리레 메 vepathuś ca śarīre me
로마-하르샤스짜 자야떼 roma-harṣaś ca jāyate
간디밤 스람사떼 하스땃 gāṇḍīvaṁ sraṁsate hastāt
뜨박짜이바 빠리다햐떼 tvak caiva paridahyate

동의어

베빠투후: 몸의 전율, 짜: 또한, 샤리레: 몸에, 메: 나의, 로마-하르샤하: 머리칼이 쭈뼛 서는, 짜: 또한, 자야떼: 일어나고 있는, 간디밤: 아르주나의 활, 스람사떼: 미끄러져 나가는, 하스땃: 손에서, 뜨박: 피부, 짜: 또한, 에바: 확실히, 빠리다햐떼: 타고 있는.

번역

온몸이 떨리고, 머리칼이 쭈뼛 서며 제 활 간디바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제 피부는 타는 듯합니다.

주석

두 종류의 육체적 전율이 있고, 머리칼이 쭈뼛 서는 현상 역시 두 종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마어마한 영적 황홀경에서나 혹은 물질적 상황에서 큰 두려움이 느껴질 때 생긴다. 초월적 깨달음에는 두려움이 없다. 현 상황에서 아르주나의 여러 가지 징후는 물질적 두려움, 이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징후를 보더라도 아르주나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는 너무나 초조해져 자기의 유명한 간디바 활을 손에서 놓치고 있으며 속에 있는 심장이 타서 바깥의 피부조차도 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삶에 대한 물질적 개념 때문에 생긴다.

원문

나 짜 샥노먀 바스타뚬 na ca śaknomy avasthātuṁ
브라흐마띠바 짜 메 마나하 bhramatīva ca me manaḥ
니밋따니 짜 빠샤미 nimittāni ca paśyāmi
비빠리따니 께샤바 viparītāni keśava

동의어

나: 아닌, 짜: 또한, 샥노미: 나는 할 수 있는, 아바스타뚬: 머무르다, 브라흐마띠: 잊어 버리는, 이바: 로써, 짜: 그리고, 메: 나의, 마나하: 마음, 니밋따니: 원인들, 짜: 또한, 빠샤미: 나는 본다, 비빠리따니: 정반대로, 께샤바: 오 악마 께시를 죽이신 분이시여(끄리쉬나).

번역

이제 저는 여기에 더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잊고 있고, 제 마음은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오 끄리쉬나, 악마 께시를 죽인 분이시여, 제 눈에는 오직 불행의 씨앗만이 보일 뿐입니다.

주석

초조하여 아르주나는 전쟁터에 더 있기가 어려웠고, 이런 연약한 마음 때문에 자기마저 잊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인간을 이렇게 당혹스러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바얌 드비띠야비니베샤따 샷(Bhayaṁ dvitīyābhiniveśataḥ syāt 《스리마드 바가바땀 11.2.37》). 이런 두려움과 정신적 평온의 상실은 물질적인 조건에 지나치게 얽매인 사람들에게 생긴다. 아르주나는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둘지라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쟁의 고통스러운 결과를 예견하고 있다. 여기에서 “니밋따니 비빠리따니”라는 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기대가 오직 좌절로 끝나게 될 때, “내가 여기에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기에게만, 그리고 자기의 안녕에만 관심이 있다. 아무도 지고의 자아(Supreme Self)에는 관심이 없다. 끄리쉬나의 뜻으로 아르주나는 자기에게 진정으로 이득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이득이 되는 것은 바로 비쉬누, 즉 끄리쉬나에 달려 있다. 속박된 영혼은 이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적 고통을 겪고 있다. 아르주나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그에게는 한탄의 씨앗만을 안겨 줄 것으로 생각했다.

원문

나 짜 스레요’누빠샤미 na ca śreyo ’nupaśyāmi
하뜨바 스바-자남 아하베 hatvā sva-janam āhave
나깡쉐 비자얌 끄리쉬나 na kāṅkṣe vijayaṁ kṛṣṇa
나 짜 라쟘 수카니 짜 na ca rājyaṁ sukhāni ca

동의어

나: 아닌, 짜: 또한, 스레야하: 좋은, 아누빠샤미: 나는 예견한다, 하뜨바: 죽임으로써, 스바-자남: 나의 친인척, 아하베: 싸움에서, 나: 아닌, 깡쉐: 나는 바란다, 비자얌: 승리, 끄리쉬나: 오 끄리쉬나, 나: 아닌, 짜: 또한, 라쟘: 왕국, 수카니: 거기에서 비롯된 행복, 짜: 또한.

번역

이 전쟁에서 제 친인척들을 죽임으로써 어떤 좋은 결과도 생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 나의 소중한 끄리쉬나여, 이 싸움의 결과로 생기는 승리도, 왕국도, 행복도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주석

우리 자아에 이득이 되는 것은 비쉬누(끄리쉬나)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속박된 영혼들은 육체적 관계에 사로잡혀 그런 상황 속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삶에 대한 그런 맹목적 개념 탓에 물질적 행복의 원인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아르주나는 끄샤뜨리야로서의 도덕적 윤리조차 잊어버린 듯하다. 두 종류의 사람, 이름하여 끄리쉬나의 개인적 명령을 받고 전쟁터에서 바로 죽는 끄샤뜨리야와 전적으로 영적 문화에 헌신하는 버리는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매우 강력하고 눈 부신 태양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한다. 아르주나는 친척들은 물론이고 그의 적마저 죽이기를 꺼린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이 요리하고 싶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친척들을 죽이게 되면 자기 삶에 행복은 더 없을 것으로 생각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좌절감에 그는 이제 숲속에 들어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고자 결심한다. 그러나 끄샤뜨리야로서 아르주나는 다른 직업에 종사할 수 없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왕국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르주나에게는 아무 왕국도 없다. 왕국을 얻기 위한 유일한 기회는 사촌 형제들과 싸워서 자기 아버지의 유산인 왕국을 되찾는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숲속에 들어가 세상과 격리된 좌절의 삶을 사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문

낌 노 라졔나 고빈다 kiṁ no rājyena govinda
낌 보가이르 지비떼나 바 kiṁ bhogair jīvitena vā
예샴 아르테 깡쉬땀 노 yeṣām arthe kāṅkṣitaṁ no
라쟘 보가 수카니 짜 rājyaṁ bhogāḥ sukhāni ca
따 이메’바스티따 윧데 ta ime ’vasthitā yuddhe
쁘라남스 땩뜨바 다나니 짜 prāṇāṁs tyaktvā dhanāni ca
아짜리아 삐따라 뿌뜨라스 ācāryāḥ pitaraḥ putrās
따타이바 짜 삐따마하하 tathaiva ca pitāmahāḥ
마뚤라 스바슈라 빠우뜨라하 mātulāḥ śvaśurāḥ pautrāḥ
샬라 삼반디나스따타śyālāḥ sambandhinas tathā
에딴나 한뚜밋차미 etān na hantum icchāmi
그나또’삐 마두수다나 ghnato ’pi madhusūdana
아삐 뜨라일로꺄-라쟈샤 api trailokya-rājyasya
헤또 낌 누 마히-끄리떼 hetoḥ kiṁ nu mahī-kṛte
니하땨 다르따라쉬뜨란나하 nihatya dhārtarāṣṭrān naḥ
까 쁘리띠 샤자나르다나 kā prītiḥ syāj janārdana

동의어

낌: 무슨 소용, 나하: 우리에게, 라졔나: 왕국이, 고빈다: 오 끄리쉬나여, 낌: 무엇, 보가이히: 즐거움, 지비떼나: 살아있는, 바: 어느 것이나, 예샴: 누구의, 아르테: 위하여, 깡쉬땀: 바라는, 나하: 우리에 의해, 라쟘: 왕국, 보가하: 물질적 즐거움, 수카니: 모든 행복, 짜: 또한: 떼: 그들 모두, 이메: 이것들, 아바스티따: 위치한, 윧데: 이 전쟁터에서, 쁘라난: 살아가다, 땩뜨바: 버리다, 다나니: 부(富), 짜: 또한, 아짜리아하: 스승들, 삐따라하: 아버지들, 뿌뜨라하: 여러 아들, 따타: 마찬가지로, 에바: 확실히, 짜: 또한, 삐따마하: 할아버지들, 마뚤라하: 외삼촌들, 스바슈라하: 장인들, 빠우뜨라하: 손자들, 샬라하: 아내의 형제들, 삼반디나하: 친척들, 따타: 뿐만 아니라, 에딴: 이 모든 것, 나: 결코, 한뚬: 죽이다, 이차미: 나는 원한다, 그나따하: 죽임을 당하는, 아삐:심지어: 마두수다나: 오 악마 마두를 죽이신 분이시여(끄리쉬나), 아삐: 설령, 뜨라이-로꺄: 삼계(三界)에서, 라쟈샤: 왕국을 위해, 헤또호: 댓가로, 낌 누: 말할 것도 없이, 마히-끄리떼: 이 지구를 위하여, 니하땨: 죽임으로써, 다르따라쉬뜨란: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 나하: 우리의, 까: 무슨, 쁘리띠히: 즐거움, 샷: 있을 것인가, 자나르다나: 오 모든 생명체의 유지자여.

번역

오 고빈다, 왕국과 행복, 그리고 삶 그 자체조차 이 전쟁의 대가로 얻어야 한다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 마두수다나, 스승들, 아버지들, 아들들, 할아버지들, 외삼촌들, 장인들, 손자들, 아내의 형제들과 다른 친척들이 자기들 목숨과 재산을 내놓을 각오로 제 앞에 서 있는데 비록 그들이 저를 죽이려 할지라도 왜 제가 그들을 죽여야 합니까? 오 모든 생명체의 유지자시여, 이 지구는 말할 것도 없이, 삼계를 다 준다 해도 저는 그들과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을 죽임으로써 우리가 도대체 어떤 즐거움을 얻겠습니까?

주석

끄리쉬나는 소와 모든 감각이 갖는 즐거움의 대상이므로 아르주나는 주 끄리쉬나를 고빈다(Govinda)로 불렀다. 이 의미 있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아르주나는 무엇이 자기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끄리쉬나께서 알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고빈다는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신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고빈다의 감각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감각은 저절로 만족하게 된다. 물질적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자기 감각을 만족시키고자 하며 주가 그런 만족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기를 원한다. 주께서는 생명체가 받아 마땅한 만큼만의 감각을 만족시키시며 그들의 욕심까지 채워주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자기 감각 만족을 바라지 않고 고빈다의 감각 만족을 위해 노력하면 고빈다의 은총으로 생명체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에 드러난 사회와 가족 구성원들을 향한 아르주나의 깊은 애정은 어느 정도는 그들에 대한 당연한 동정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르주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누구나 자기 부(富)를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과시하고자 하지만, 아르주나는 자기 친척들과 친구들이 전쟁에서 모두 죽게 되면 승리의 대가로 얻을 부를 나눠 가질 자가 없음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계산은 물질적 삶에서 비롯되는 전형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초월적 삶은 다르다. 헌애자는 주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려고 하므로 주가 원하시면 주에게 봉헌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부를 받아들일 수 있고, 주가 원치 않으면 티끌도 받아서는 안 된다. 아르주나는 그의 친척을 죽이고 싶지 않았고 그들을 죽일 필요가 있으면 끄리쉬나께서 직접 죽이시기를 바랐다. 여기서 아르주나는 끄리쉬나께서 그들이 전쟁터에 나오기 전에 이미 그들을 죽였고, 자기는 단지 끄리쉬나의 도구가 되려고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사실은 다음 장에서 밝혀진다. 주의 타고난 헌애자로서 아르주나는 사악한 그의 사촌 형제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은 주의 계획이었다. 주의 헌애자는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지만, 주는 사악한 자들이 헌애자에게 가한 어떠한 나쁜 짓도 참지 않으신다. 주는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는 용서하실 수 있으시지만, 당신의 헌애자에게 해를 끼친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르주나는 악한들을 용서하고자 했지만 주께서는 그들을 단호히 처단하시고자 했다.

원문

빠빠메 바스라예다스만 pāpam evāśrayed asmān
하뜨바이딴 아따따이나하 hatvaitān ātatāyinaḥ
따스만 나르하 바얌 한뚬 tasmān nārhā vayaṁ hantuṁ
다르따라쉬뜨란 사-반다반 dhārtarāṣṭrān sa-bāndhavān
스바자남 히 까탐 하뜨바 sva-janaṁ hi kathaṁ hatvā
수키나 샤마 마다바 sukhinaḥ syāma mādhava

동의어

빠빰: 악행들, 에바: 확실히, 아스라옛: 틀림없이 다가온다, 아스만: 우리들, 하뜨바: 죽임으로써, 에딴: 이 모든 것, 아따따이나하: 침략자들, 따스맛: 그러므로, 나: 결코, 아르하하: 마땅한, 바얌: 우리, 한뚬: 죽이다, 다르따라쉬뜨란: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 사-반다반: 친구들과 함께, 스바-자남: 친인척들, 히: 확실히, 까탐: 어떻게, 하뜨바: 죽임으로써, 수키나하: 행복한, 샤마: 우리가 될 것이다, 마다바: 오 끄리쉬나, 행운의 여신의 남편이시여.

번역

그런 공격자들을 살해한다면 죄가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과 친구들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 끄리쉬나, 행운의 여신의 남편이시여, 우리가 친인척들을 죽임으로써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주석

베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섯 종류의 정당한 이유 없이 공격하는 자가 있다. (1) 독을 먹이는 자, (2) 집에 불을 지르는 자, (3) 치명적 무기로 공격하는 자, (4) 부를 강탈하는 자, (5) 남의 땅을 점유하는 자, (6) 남의 아내를 납치하는 자. 이런 공격자들은 즉시 처형되어야 하며 이런 자는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공격자를 죽이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 무척 합당한 것이지만, 아르주나는 그런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성품이 성인다워서 성인답게 그들을 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성인다움은 끄샤뜨리야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성인다움이 요구된다고 할지라도 비겁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주 라마는 너무나 성인다워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까지도 주 라마의 왕국(라마-라쟈)에 살고 싶어 하지만 그는 비겁함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라바나가 라마의 부인, 시따를 납치했기 때문에 라바나는 라마를 공격한 것이고, 그에 대한 조처로 주 라마는 라바나에게 역사상 전례 없는 확실한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아르주나의 경우, 특이하게도 공격자가 바로 자기 할아버지, 스승, 친구들, 아들들, 손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 때문에 아르주나는 일반적 공격자를 다루는 데 필요한 가혹한 조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성자다운 사람은 항상 남을 용서하라고 권장된다. 성자다운 사람을 위한 그러한 가르침은 어떠한 정치적 위기 상황보다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아르주나는 정치적 이유로 자기 친인척들을 죽이기보다는 종교와 성인다운 행동에 기초하여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육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그들을 죽이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전쟁의 결과물로 얻은 왕국과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은데 친인척들을 죽임으로써 자기 목숨과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르주나가 끄리쉬나를 “마다바(Mādhava)”, 즉 행운의 여신의 남편이라고 부른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끄리쉬나께 행운의 여신의 남편으로서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불행을 가져올 일을 하도록 권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러나 끄리쉬나는 그 누구에게도 결코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당신의 헌애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원문

얏댭예떼 나 빠샨띠 yady apy ete na paśyanti
로보빠하따-쩨따사하 lobhopahata-cetasaḥ
꿀락샤야-끄리땀 도샴 kula-kṣaya-kṛtaṁ doṣaṁ
미뜨라-드로헤 짜 빠따깜 mitra-drohe ca pātakam
까탐 나 계얌 아스마비히 kathaṁ na jñeyam asmābhiḥ
빠빠다스만 니바르띠뚬 pāpād asmān nivartitum
꿀락샤야-끄리땀 도샴 kula-kṣaya-kṛtaṁ doṣaṁ
쁘라빠샫비르 자나르다나 prapaśyadbhir janārdana

동의어

야디: 만약, 아삐: 심지어, 에떼: 그들, 나: 하지 않다, 빠샨띠: 보다, 로바: 탐욕에 의해, 우빠하따: 압도된, 쩨따사하: 그들의 심장, 꿀라-끄샤야: 가족을 죽이는, 끄리땀 :행한, 도샴: 잘못, 미뜨라-드로헤: 친구들과 싸움에 있어, 짜: 또한, 빠따깜: 죄의 과보, 까탐: 왜, 나: 해서는 안 된다, 계얌: 알려진, 아스마비히: 우리들에 의해, 빠빳: 죄로부터, 아스맛: 이것들, 니바르띠뚬: 멈추다, 꿀라-끄샤야: 왕조의 멸망, 끄리땀: 행해진, 도샴: 범죄, 쁘라빠샷비히: 볼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자나르다나: 오 끄리쉬나.

번역

오 자나르다나, 비록 이들이 욕심으로 인해 자기 가족을 죽이거나 친구들과 싸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문을 파괴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왜 이런 죄를 지어야 합니까?

주석

끄샤뜨리야는 경쟁자 측으로부터 싸움이나 내기에 초대받으면 그것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무 때문에 아르주나는 듀로다나 측에게 받은 도전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에 관해서 아르주나는 상대방은 그러한 도전의 결과가 어떨지 모르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자신은 사악한 결말을 예견할 수 있었기에 그 도전에 응할 수 없었다. 의무란 사실 그 결과가 좋을 때 구속력이 있는 것이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의무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아르주나는 이러한 옳고 그름을 고려하여 결국 싸우지 않기로 했다.

원문

꿀락샤예 쁘라나샨띠 kula-kṣaye praṇaśyanti
꿀라-다르마 사나따나하 kula-dharmāḥ sanātanāḥ
다르메 나쉬떼 꿀람 끄릿스남 dharme naṣṭe kulaṁ kṛtsnam
아다르모’비바바뜌따 adharmo ’bhibhavaty uta

동의어

꿀라-끄샤예: 가족을 멸하는 것, 쁘라나샨띠: 사라지게 된다, 꿀라-다르마하: 가족 전통, 사나따나하: 영원한, 다르메: 종교, 나쉬떼: 파괴되는, 꿀람: 가문, 끄릿스남: 전체, 아다르마하: 비(非)종교, 아비바바띠: 전환하다, 우따: 라고 한다.

번역

왕조의 파괴로 영원한 가족 전통이 사라지게 되고, 그 결과 가족의 생존자들은 비종교적인 행위를 하게 됩니다.

주석

바르나스라마 제도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바르게 성장하고 영적 가치를 얻게 하는 여러 종교 전통의 원칙이 있다. 연장자들은 가족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정화(淨化) 과정에 책임을 진다. 그러나 연장자들이 죽게 되면 정화 과정이라는 가족 전통이 중단될 것이고, 남은 어린 가족 구성원들은 비종교적 습관을 들이게 되고, 그 결과 영적 구원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이유에서든 가족의 연장자가 살해되어서는 안 된다.

원문

아다르마비바밧 끄리쉬나 adharmābhibhavāt kṛṣṇa
쁘라두샨띠 꿀라-스뜨리야하 praduṣyanti kula-striyaḥ
스뜨리슈 두쉬따수 바르쉬네야 strīṣu duṣṭāsu vārṣṇeya
자야떼 바르나-상까라하 jāyate varṇa-saṅkaraḥ

동의어

아다르마: 비종교, 아비비밧: 만연하게 되는, 끄리쉬나: 오 끄리쉬나, 쁘라두샨띠: 더럽혀지는, 꿀라-스뜨리야하: 가족의 여인들, 스뜨리슈: 여성다움, 두쉬따수: 더럽혀지게 되는, 바르쉬네야: 오 브리쉬니의 후손이여, 자야떼: 생기게 된다, 바르나-상까라하: 원치 않는 자손.

번역

오 끄리쉬나여, 비종교가 가족에 만연하면 그 가족의 여인들이 더럽혀지고, 정조가 타락함으로써, 오 브리쉬니, 원치 않는 자손이 생기게 됩니다.

주석

인간 사회에서 바른 인구는 삶의 평화와 번영, 영적 성장의 기본이다. 바르나스라마 종교 원칙은 국가와 공동체 전체의 일반적 영적 진보를 위해 올바른 인구가 사회 전체에 우세하도록 고안된 제도이다. 그러한 올바른 인간은 여성들의 순결과 정절에 달려있다.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운 것처럼 여성들도 타락하기 아주 쉬운 경향을 지닌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여성들 둘 다 가족의 연장자들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종교적 관례를 따름으로써 여성들은 간음으로 오도되지 않을 것이다. 짜나꺄 빤디따(Cāṇakya Paṇḍita)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여성은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덥지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 여성이 가족 전통에 존재하는 다양한 규범에 따른 종교 활동에 늘 종사하게 되면 그 정숙함과 헌신 덕분에 바르나스라마 제도의 구성원이 되기에 적합한 올바른 인구를 낳을 것이다. 그런 바르나스라마 제도가 무너지게 되면 자연히 여성은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고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간음하게 된다. 사회에서 무책임한 남성들 역시 간음을 일삼아 결국 원치 않는 아이들이 인류에게 홍수처럼 늘어나 전쟁과 전염병의 위험을 일으키게 된다.

원문

샹까로 나라까야이바 saṅkaro narakāyaiva
꿀라-그나남 꿀라샤 짜 kula-ghnānāṁ kulasya ca
빠딴띠 삐따로 혜샴 patanti pitaro hy eṣāṁ
룹따-삔도다까-끄리야하 lupta-piṇḍodaka-kriyāḥ

동의어

샹까라하: 그런 원치 않는 자손들, 나라까야: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다, 에바: 확실히, 꿀라-그나남: 가족을 죽인 자들, 꿀라샤: 그 가족, 짜: 또한, 빠딴띠: 타락하다, 삐따라하: 조상들, 히: 확실히, 에샴: 그들의, 룹따: 멈추었다, 삔다: 음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우다까: 그리고 물, 끄리야하: 제사.

번역

원치 않는 인구의 증가는 가족과 가족 전통을 파괴한 자들 모두에게 지옥 같은 삶을 반드시 야기합니다. 그러한 타락한 가문의 조상은 음식과 물을 바치는 제사의 완전한 단절로 추락하게 됩니다.

주석

결실을 낳는 행위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가문의 조상에게 제철 음식과 물을 바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제사는 비쉬누 숭배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비쉬누에게 바친 음식을 먹으면 죄업이 낳은 모든 종류의 반작용(인과응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조상들이 다양한 형태의 죄업으로 고통받고 있을 수 있고, 가끔 일부 조상은 총체적 육신(gross material body)을 얻지 못하고 귀신과 같은 미세 육신(subtle body)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따라서 후손들이 쁘라사담(prasādam 끄리쉬나께 먼저 바친 음식)을 조상께 바치면 조상들이 귀신의 몸이나 다른 형태의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상들을 위한 이런 구원 행위가 가족 전통이고, 봉헌의 삶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제례 의식을 수행해야만 한다. 봉헌의 삶에 종사하는 자는 이런 의식이 필요 없다. 단지 봉헌을 수행함으로써 수백 수천 조상을 모든 형태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바가바땀(11.5.41)에서 말하기를,

데바르쉬부땁따느리남 삐뜨리남 devarṣi-bhūtāpta-nṛṇāṁ pitṝṇāṁ  
나 낀까로 나얌 리니 짜 라잔 na kiṅkaro nāyam ṛṇī ca rājan
사르바뜨마나 야 샤라남 샤란얌 sarvātmanā yaḥ śaraṇaṁ śaraṇyaṁ
가또 무꾼담 빠리흐리땨 까르땀 gato mukundaṁ parihṛtya kartam

“모든 종류의 의무를 포기하고, 해방을 수여하는 무꾼다의 연꽃과 같은 발에 은신해 진실하고 진지하게 그 길을 가는 누구라도 데바들, 성자들, 모든 생명체, 가족, 조상, 인류에 대한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없다.” 최고인격신께 봉헌함으로써 그런 의무들은 저절로 성취된다.

원문

도샤이레따이 꿀라그나남 doṣair etaiḥ kula-ghnānāṁ
바르나-상까라-까라까이히 varṇa-saṅkara-kārakaiḥ
웃사댠떼 자띠-다르마하 utsādyante jāti-dharmāḥ
꿀라-다르마스짜 샤스바따하 kula-dharmāś ca śāśvatāḥ

동의어

도샤이히: 그러한 잘못으로, 에따이히: 이 모든, 꿀라-그나남: 가족을 파괴하는 자들의, 바르나-상까라: 원치 않는 자식들, 까라까이히: 원인이 되는, 웃사댠떼: 파멸하는, 자띠-다르마하: 공동체 사업, 꿀라-다르마하: 가족 전통, 짜: 또한, 샤스바따하: 영원한.

번역

가족 전통을 말살하고 원치 않는 자식이 생기게끔 하는 자들의 사악한 행위로 인해 모든 종류의 공동체 사업과 가족의 복지 행위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주석

사나따나 다르마, 즉 바르나스라마 다르마라는 제도에 따른, 인간 사회의 네 계층을 위한 공동체 사업과 가족 복지 행위는 인류에게 궁극적 해방을 선사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사회의 무책임한 지도자들에 의한 사나따나 다르마 전통의 파괴는 그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삶의 목표인 비쉬누를 잊게 한다. 그러한 지도자를 눈먼 자라고 하며 그런 지도자를 따르는 자들은 틀림없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원문

웃산나-꿀라-다르마남 utsanna-kula-dharmāṇāṁ
마누샤남 자나르다나 manuṣyāṇāṁ janārdana
나라께니야땀 바소 narake niyataṁ vāso
바바띠땨누슈스루마 bhavatīty anuśuśruma

동의어

웃산나: 망가진, 꿀라-다르마남: 가족 전통을 가진 자들의, 마누샤남: 그런 사람들의, 자나르다나: 오 끄리쉬나, 나라께: 지옥에, 니야땀: 항상, 바사하: 거주, 바바띠: 그렇게 되다, 이띠: 따라서, 아누슈스루마: 사제 전수를 통해 듣다.

번역

오 끄리쉬나, 인류를 보살피는 분이시여, 저는 사제 전수를 통해 가족 전통을 파괴한 자들은 항상 지옥에 머문다고 들었습니다.

주석

아르주나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자기 개인적 경험이 아닌 권위자들에게서 들은 것에 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식을 얻는 방식이다. 우리는 실제 지식에 이미 정통한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지식의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바르나스라마 제도에서는 인간이 죽기 전에 그가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하는 과정을 거치는 절차가 있다. 항상 죄 많은 행위를 하는 사람은 쁘라야스찌따(prāyaścitta)라는 속죄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업의 결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지옥으로 틀림없이 옮겨질 것이다.

원문

아호 바따 마핫빠빰 aho bata mahat pāpaṁ
까르뚬 뱌바시따 바얌 kartuṁ vyavasitā vayam
야드라쟈-수카-로베나 yad rājya-sukha-lobhena
한뚬 스바-자남우댜따하 hantuṁ sva-janam udyatāḥ

동의어

아호: 아아, 바따: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마하: 큰, 빠빰: 죄, 까르뚬: 행하다, 뱌바시따하: 결정했다, 바얌: 우리, 얏: 때문에, 라쟈-수카-로베나: 왕족의 행복을 누릴 욕심으로, 한뚬: 죽이다, 스바-자남: 친척, 우댜따하: 하려고 하는.

번역

아아, 우리가 지금 큰 죄업을 지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왕족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는 바로 우리의 친인척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주석

이기적인 동기로 인간은 자기 형제, 어머니,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같은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러한 예들이 세계 역사에 많이 있다. 그러나 주의 신성한 헌애자인 아르주나는 항상 도덕적 원칙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이러한 행위를 피하고자 조심하고 있다.

원문

야디 맘 아쁘라띠까람 yadi mām apratīkāram
아샤스뜨람 샤스뜨라-빠나야하 aśastraṁ śastra-pāṇayaḥ
다르따라쉬뜨라 라네 한유스 dhārtarāṣṭrā raṇe hanyus
딴메 끄세마-따람 바벳 tan me kṣema-taraṁ bhavet

동의어

야디: 설령, 맘: 나를, 아쁘라띠까람: 저항하지 않는, 아샤스뜨람: 완전한 무기를 갖추지 않은, 샤스뜨라-빠나야하: 무기를 손에 든 자들, 다르따라쉬뜨라하: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 라네: 전쟁터에서, 한유후: 죽일 수도 있는, 땃: 그것, 메: 나에게, 끄세마-따람: 더 나은, 바벳: 될 것이다.

번역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드리따라쉬뜨라의 아들들이 이 전쟁에서 비무장 상태의 저항하지 않는 저를 죽이는 것이 제게 오히려 더 나을 것입니다.

주석

끄샤뜨리야의 무사도 원칙에 따르면, 비무장이며 싸울 의지가 없는 적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그런 난처한 처지에서 적의 공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는 상대편이 얼마나 싸움에 열성적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징후는 그가 주의 위대한 헌애자이기에 갖는 착한 마음 때문이다.

원문

산자야 우바짜 sañjaya uvāca
에밤 욱뜨바르주나 상켸 evam uktvārjunaḥ saṅkhye
라토빠스타 우빠비샷 rathopastha upāviśat
비스리쟈 사-샤람 짜빰 visṛjya sa-śaraṁ cāpaṁ
쇼까-삼비그나-마나사하 śoka-saṁvigna-mānasaḥ

동의어

산자야 우바짜: 산자야가 말했다, 에밤: 따라서, 욱뜨바: 말하는, 아르주나하: 아르주나, 상켸: 전쟁터에서, 라타: 마차의, 우빠스테: 자리에서, 우빠비샷: 다시 앉다, 비스리쟈: 옆에 놓고, 사-샤람: 화살과 함께, 짜빰: 활, 쇼까: 한탄하며, 삼비그나: 비탄에 빠진, 마나사하:마음속에.

번역

산자야가 말했다: 전쟁터에서 이렇게 말한 다음, 아르주나는 활과 화살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비탄에 잠겨 마차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주석

적의 상황을 살펴보는 동안 아르주나는 마차 위에 서 있었지만, 너무나 비탄에 빠진 나머지 자신의 활과 화살을 버리고 주저앉고 말았다. 주께 봉헌하는 이렇게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깨달음의 지식을 전수받기에 적합하다.

이로써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따의 제1장, 꾸룩쉐뜨라 전쟁터에 모인 군대의 관찰에 대한 박띠베단따의 주석을 마칩니다.